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29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과 슬픔과 웃음을 모두 총동원해서 마지막 소풍을 즐겼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그레이트 홀 계단첫날 보게 된 첫 작품. 엘 그레코 '평범한 철제 문을 열자 마치 오즈의 마법사처럼 흑백 세상에 갑자기 생기 입혀지듯 환상과 같은 톨레도의 풍경이 우리를 마주한다'라파엘로 의 그림1920년대에 태어난 이탈리아의 화가 베를린기에로 텐두루 신전. 1970년대에 댐 공사로 나일강이 범람했을 때 이 멋진 건축물은 총800 톤에 달하는 사암으로 해체되어 뉴욕으로 옯겨왔고, 이후 메트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천 년 전 북송의 거장  곽희의 두루마리 그림 곽희는 풍경화가 ' 일상 세계의 굴레와 족쇄'로 부터 '두루미의 비행과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가까운 벗이 되는'곳으로 도..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 태지원 -

가끔은 혼자 있을 때  분노를  터트리고, 욕을 내뱉어도 된다. 혼자 있을 때 욕을 좀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분노의 일기를 쓴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아니니까. 분노를 밖으로 꺼내놓으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별로인 상황은 별로라고 인정하고, 화낼 건 화내고 슬퍼할 일은 슬퍼해도 된다. 지나칠 정도로 '남 탓' '내  탓'만 하지 않으면 된다.감정을 다 터트린 후 마음을 비워내고 나면 보인다.  판도라의 상자 바닥에 가라앉은 희망이. 현재 상황이 괜찮다는 억지 외곡도 아니고,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헛된 망상도 아니다. 상황이 좋아진다는 기대를 걸지 않아도 그저 내 길을 걸을 수 있는, 괴상하지만 작은 희망, 역설적이게도 '망하면 어때'에 담긴 희망과 용기가 우리의 하루를 버티게 ..

천개의 파랑 - 천선란 장편

연재는 무언가 열중할 때 빛나는 인간이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빛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열을 감지할 수 있는 콜리의 눈에는 그것이 보였다. 연재는 콜리의 몸을 수리할 때 자주 빛을 뿜었다.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중하며 콜리의 다리를 만지던 순간과 그릇에 담아 온 씨리얼을 퍼먹으며 어느 부분이 잘못 연결되어 있는지 도면을 살펴볼 때에도 빛이 나왔다. 지금도 연재의 몸에서는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콜리가 연재의 등에 살포시 손을 얹ㅆ다. 연재는 "뭐야?" 하고 물었지만 콜리의 손을 치우거나 몸을 일으키지는 않았다.그래서 콜리는 오래도록, 연재의 진동이 느껴질 때까지 손을 올려둘 수 있었다. 떨린다. 행복에 휩싸인 연재의 몸이 진동으로떨렸다. 연재는 살아..

어떤 물질의 사랑 - 최선란 소설집

"물론 지구에 살고 있으면 전부 지구인이겠지만.""그럼 제가 외계인이라는 거예요?""그게 뭐가중요해요. 지구의 절반은 외계인이에요. 모두가 다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고요,웃긴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생각보다 중요해요. 그걸 알아야 해요. 이 지구에 같은 인간은 없어요. 모두가 다 서로에게 외계인인 걸, 모두가 같은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요."            - 143p "라현아, 끊임없이 사랑을 해. 꼭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존재를 만나. 그 사람이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너를 찾아올 사랑이니까. 너는 지구인이니까. 네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구인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지만 그건 걱정 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외계인이니까.""결국..

풍덩 - 우지현 그림에세이 -

위고 폰즈 2020차일드 하삼 1912년도시인의 휴양지    -  펠릭스 발로통 1925.앙리 마티스 1946년라울 뒤피 1925이디스 미첼 프렐위츠   1922데이비드 호크너 1967구스타프 클림트 1900"호수에서 수영을 해. 수영하고 나면 다시 그림을 조금 그려. 햇빛이 나면 호숫가를, 날이 흐리면 내 방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려......"클림트가 오스트리아 북부의 아터제호수에 머물 당시, 연인 마치 치머만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당신의 호수를 찾았나요? 판양쭝   2014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마음이 낙천적인 삶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파블로 피카소에게는 수영이 그랬다.'춤추고 노래하고픈 -정오의-태양 아래 벌거벗고 수영하고픈 - 우레 같은 소리를 ..

나인 - 천선란 장편소설 -

행복은 살아가는 도중에 느끼는 잠깐의 맛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사람은 미래다. 단맛, 쓴맛, 떫은 맛, 신맛, 짠 맛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도 무엇을 먹었느냐와 비슷하게 선택에 따라 감정을 느끼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미래는 태어난다는 것은 세상과 합치된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만일 이유가 없다면 지금 당장 도로에 뛰어들어 차에 치어 죽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말을 열세 살 때 했다. 나인은 그런 미래에게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려 줬다. 너는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먹으며 언젠가 네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미래는 팔짱을 낀 채 나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나이를 먹는 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벗 겨 낸 세상의 비밀을 한 겹..

나를 위로하는 그림 - 우지현 그림에세이 -

나와 온전히 마주하는 그림 한 점의 일상.어떤 말은 고요하게 품을 때 더 많은 말을 한다. 뒷모습이 그렇다. 영원히 타인에 의해서만 관찰되는 뒷모습은 영영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우리의 슬픈 내면인지 모른다. 그 슬픔이 인간의 삶에 아주 조용히, 소리 없이 새겨지고 있음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내면의 혼돈과 갈등은 매우 시적이며, 그 억제된 감정이 오히려 강렬하게 느껴지는 슬픔의 역설이다. 드러내기보다 감춘 모습이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얼어붙은 듯한 알 수 없는 슬픔이 도리어 깊은 공감을 준다. 문득 프랑스 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의 포토에세이 에 있는 한 구절이 생각난다."어쩌면 뒷모습은 그 빈약함 때문에 오히려 효과적이고, 간결해서 오히려 웅변적이다. 등이 ..

내 머릿속 미술관 - 과학하는 미술가 임현균 -

한 폭의 그림에 깃들어 있는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다양한 접근을 바라보면서 어느덧 목적을 잃고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그렇지만 그 느낌 자체로 즐겁습니다.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만들어 내는 예술을 매개로 우리들은 끊임없이이어지는 대화를 하고 다양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요          - 5p  미술을 보는 또 다른 길                안현배(예술사학자, 작가)의 이 책을 권하는 글 중에서  - 철학적인 면에서 추상은 (사물이 가지는) 사소한 특징을 '일반화'시키는 것이고, 조형 미술적 측면에서는 (화가들이)그리는 표현법을 아주 '개별화' 시키는 것이다.추상은 사물의 사소한 특징을 부각시켜 화가만의 생각으로 뻔뻔하게 그린다.   - 41..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 마틴 게이퍼드 -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터  2007년.  슬레드미어를 지나 요크로 가는 길.    1997년개로비 언덕.   1998년컨스터블과 호크니가 암시하듯 나무는 풍경 속에 자리한 인간의 형상, 곧 식물 거인과 같다.어떤 것은 영웅적이고, 어떤 것은 우아하며, 또 어떤 것은 사악하다. 그러나 또한 나무는 터지가 설명한 대로 자연 공학의뛰어난 위업이기도 하다. 나무는 여름에 중력과 바람에 저항하면서 1톤의 나뭇잎을 지탱하고 있다, 터지는 말한다."물론 인간 건축가들은 더 크고 때때로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같이 매우 아름다운 구조를 창조해낸다. 그러나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은 지어질 뿐 자라지는 않는다.  대조적으로 나무는 자라서 교회처럼 커질 수도 있고, 발아하는 순간부터 전적으로 기능적이다" 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 박완서 에세이 -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 중에서 이 속담만은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똥을 피하는 건 더러워서일 뿐 무서워서가 아니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변명은 될지 몰라도 여럿이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 대해선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너도 나도 똥을 피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똥통이 되어 버릴 것이 아닌가. 똥은 피할 게 아니라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게 수다. 인간답게 사는 길도 나만 인간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인간답지 못하다. 이웃이 까닭 없이 인간다움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나만은 오래오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어리석음이다 - 130p 특혜보다는 당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