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나인 - 천선란 장편소설 -

아라모 2024. 5. 25. 11:07

 

 

 

행복은 살아가는 도중에 느끼는 잠깐의 맛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사람은 미래다. 단맛, 쓴맛, 떫은 맛, 신맛, 짠 맛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도 무엇을 먹었느냐와 비슷하게 선택에 따라 감정을 느끼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미래는 태어난다는 것은 세상과 합치된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만일 이유가 없다면 지금 당장 도로에 뛰어들어 차에 치어 죽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말을 열세 살 때 했다.

 

나인은 그런 미래에게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려 줬다. 너는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먹으며 언젠가 네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미래는 팔짱을 낀 채 나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벗 겨 낸 세상의 비밀을 한 겹씩 먹으면, 어떤 비밀은 소화되고 흡수되어 양분이 되고, 어떤 비밀은 몸 구석구석에 염증을 만든다. 비밀의 한 꺼풀을 먹지 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의 시스템은 그걸 먹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설정되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기가 너무 이르면 소화하지 못해 탈이 나거나 목이 막혀 죽기도 하고, 너무 늦으면 비밀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배출시켜 그렇게아무것도 모르는 텅 빈 몸이 된다.  지모가 한 말이다.

나인은 그 말이 자신을 낳아 준 사람이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인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 이름이 나인이야. 내게서 난 싹 아홉 개 중 가장 마지막에 핀 아홉 째. 제일 강했어. 네가.

나는 엄마가 되는게 두려워서 이모가 되었고, 언제나 거리를 두고 너와 함께 공간을 나눴어. 나는 여전히 내가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건 알아. 네가 미래와 현재르 사랑하듯, 그리고 그 아이들이 너를 사랑하듯 나도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