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내가 사랑한 화가들 - 정우철 -

아라모 2024. 9. 19. 18:09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우리는 왜 미술관을, 전시장을 찾을가요?  누군가는 그림 앞에서 미소를 짓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립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좋은 영감을 받죠. 저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림이나 작품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고 싶어서, 힘겨운 일상을 위로받고 싶어서라는 답변이 많을 것 같네요.........................
위대한 예술가라고, 천재라고, 거장이라고 추앙받는 화가들의 인생을 공부하면서 제 나름대로 찾은 그들의 공통점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니다           
-  5p  프롤로그 중  -

 
1장  사랑, 오직 이 한 가지를 추구했던 화가들
 
Marc Chagall (1887 -1985)  유한한 삶에서 변치 않는 사랑을 바랐던.
"나는 나의 세계, 나의 삶, 내가 사랑했던, 꿈꿨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그렸다."

<비테프스크 위에서> 연도 미상.   태어난 러시아의 작은 마을.

<손가락이 일곱 개인 자화상>  1913

< 생일 > 1915

< 도시 위에서 > 1914-18

< 그녀 주위에 >  1945.  1944년 9월 아내 벨라의 사망후.. ' 유대 예술의 뮤즈, 내 사랑 벨라. 그대는 세상을 떠났지만 내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리라 '

샤갈과 벨라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Henri Matisse (1869-1954)  색체의 혁명가, 야수파의 창시자
"내가 꿈꾸는 미술이란 정신노동자들이 아무 걱정, 근심없이 편안하게 머리를 누일 수 있는 안락의자 같은 작품이다."

프랑스 북동부에서 부유한 곡물상의 아들로 태어남. 부모의 바램대로 변호사.법률사무소서기로 일하다 스무살 맹장염으로 수술후 아마추어 화가였던 어머니에게서 운명처럼 만난 물감상자.

더 단순하고 강렬하게, 더 마티스답게.

< 콜리우르의 프랑스식 창문 > 1914

1941년 십이지장암 선고. 꺾인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켄버스에 구아슈를 발라 오려내는 '컷아웃'

77세에, 니스 근교의 작은마을 방스에 있는 로사리오 성당을 장식. <성 도미니크>,< 십자가의 길>, <생명의 나무>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이다. 나는 이제 떠날 준비가 됐다.'
 
Amedeo Modigliani (1884-1920)  매 순간 불타올랐던 보헤미안 예술가
"행복은 우울한 얼굴의 천사이다."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태어남.  열한살에 흉막염. 성인이 된 후 폐결핵으로 평생 고생
몽마르트 세탁선에서 피카소를 만남.

< 노란 재킷을 입은 여인 > 1909. 원래 빨간 재킷을 입은 남작부인이 화내고 그냥 가버려 후원자였던 알렉상드르가 구매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조각을 다시 시작. 집 근처에 유명한 조각가 브랑쿠시 영향을 받음.. 긴 얼굴과 아몬드 모양의 눈의 특징이 시작

<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 1917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다"

< 잔 에뷔테른의 초상 > 1919

1919년 마지막 작품      " 이탈리아여, 그리운 이탈리아여."

모딜리아니 사망 이틀 뒤 아파트 난간에서 ....
 
Alphonse Maria Mucha  1860-1939    민족을 위해 그림을 그렸던 프라하의 영웅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시장이 될 것이다."

체코 동부 모라비아생.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못 박힘> 1868  여덟삶 무렵에 그린...
후원자 백작의 제안으로 파리 입성.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찾아온 행운.  후원 중단으로 인쇄 공장에 취직.  유명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와의 인연이 시작됨
'아름답게, 눈이 부시게'

< 백합의 성모 마리아 > 1905

민족을 위한 예술에 눈뜨다.  < 슬라브 서사시 >연작 20번째 , 슬라브 찬가.   1926

< 체코 음악의 판테온 > 1929  / 수염을 기른 사람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옆에 종이 .펜든 사람 안토닌 드보르작
"나는 이렇게 믿는다. 한 국가와 국민이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뿌리에서 시작해 계속해서 유기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몰라서는 안 된다."
 
2장. 자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모든 시련을 감수한 화가들
 
Frida Kahlo  1907-1954   고통으로 그려낸 의지의 얼굴
"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헝가리계 독일인으로 부모에게서 태어남. 여섯 살에 척추성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덜 자라고..  그 후 또 버스와 전동차 사고로 

"나는 혼자일 때가 많았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재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1931년작.   천재의 아내로 산다는 것

디에고와 이혼 후 그린 작품.  1년 뒤 다시 재혼

< 부러진 척추 >  1944 /  53년 오른쪽 무릎 절단 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두 발이 왜 필요하겠어."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칼로 스튜디오.  

 
 
Gustav Klimt  1862-1918  과거와 현대를 동시에 간직한 모순의 화가
"나라는 예술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의 그림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던 예술적 감각.  동생 에른스트와 친구 프란치 마치와 <아티스트 커퍼니> 설립. 벽화 의뢰를 받기 시작. 부르크 극장의 <로미오와 줄리엣>  황제로부터 황금공로십자 훈장 수여. 
1892년 가족들 사망.  빈 대학의 천장화 의뢰. <철학> <법학> <의학>

'빈 분리파' 결성.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  < 분리파 1회 전시포스터 >

황금빛 키스의 탄생. 1903년 이탈리아 라벤나 성당에서 비잔틴 모자이크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압도        < 키스 > 1907

키스의 여주인공 클림트의 뮤즈 에밀리 플뢰게 .   수많은 하트로 마음을 전한 편지. 약 400통의 편지를 보냈다함.

< 아터 호수 > 1900. 거의 여름마다 휴식을 취하러 간 호수. "정사각형은 영원성, 완전함을 상징이다. 정사각형은 모사하는 대상을 평화로운 분위기에 잠길 수 있게 만드는 최적의 형식이다. 그림은 정사각형에 담길 때 우주의 한 부분이 된다."

< 삶과 죽음 > 1915   이 그림 완성 후 2년도 채 되지않아 56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
 
Toulouse Lautrec  1864-1901  물랠루즈의 밤을 사랑한 파리의 작은 거인
"인간은 추악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로트레크의 정신적 스승  드가 <욕조> 1886    /     툴루즈 로트레크 < 화장 > 1896
'로트레크는 내 옷을 가져가서 자기 몸에 맞게 재단했다.'

현실을 미화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그려주겠습니다. 돈은 필요없어요. 대신, 항상 무대 맨 앞자리를 비워둘 것, 그리고 술이 떨어지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

<대중에게 답례하는 이베트 길베르 > 1894                    /       < 다방 자포네 >  1893

하층민들의 일상이 예술이 되다. 

'달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Kathe Kollwitz( 케테 콜비츠)  1867-1945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실과 투쟁을 기록한 
" 이 시대에 변호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

< 직조공들 연작 중 '죽음' > 1897  .    동프로이센 수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남. 지금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베를린 여성 예술가 학교에서 공부중 현대 독일 판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클링거의 책 < 회화와 판화>를 만나.
우연히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의 희곡 <직조공>을 보고 모티브로 5년 동안 여섯 점을 연작으로 제작 전시함

'아름다운 것만이 예술이 아니다'   직조공들 연작 중 < 폭동 >  1897

< 부모 >   1921   둘째 아들 페터의 전사.

< 전쟁은 이제 그만 >  1924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자화상 > 1924  크레용   /  

# 독일 여행 중에 만난  <피에타 상>  베를린에 있는 노이에 바헤.

 
 
3장.  배신, 세상의 냉대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화가들
 
Paul Gauguin  1848-1903  원시의 색을 찾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평일엔 주식을 팔고, 주말엔 그림을 그린 고갱은 파리에서 태어나 두 살때  페루(할머니집)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해군에 지원 바다를 누비는 삶을 시작. 어머니의 사망으로 후원자에 의해 주식 중개인으로.
독학의 한꼐를 느껴 미술학원에서 카미유 피사로를 만남. 프랑스 증권 시장 붕괴로 실직 후 화가에 도전.
"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페루에서 느꼈던 더 강렬한 색을 찾고 싶어."
프랑스 끝단인 브르타뉴의 퐁타방으로.   '빨강보다 더 빨간, 파랑보다 더 파란' 

< 소파에 잠든 메테 고갱 > 1875

< 설교 후의 환상 > 1888  천사와 야곱의 씨름 장면.

<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 1890  /            위대한 예술가와 오만한 괴물 사이

< 안녕하세요 고갱씨 > 1889

< 파도 속의 여인 > 1889
고흐와의 사건 후 드디어 타히티 섬으로.  결국 신화가 된 예술계의 이노베이터 

 
Bernard Buffet  1928-1999  죽음으로 물든 파리의 민낯까지 사랑한 .
" 인생이 만약 멋진 것이라면 예술가로서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천재 화가의 발견 .
파리에서 태어나 독실한 카톨릭 신다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자라 낮에는 중등학교, 밤에는 야간 미술학교를 다니다  '에콜 데 보자르'로 .

가난해서 자신이 산 재료로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던 뷔페는 스트레스 해소로 붓의 뒷부분으로 배경을 긁어 스크래치가 많다고.  1944년 동네에 미사일이 떨어져 수백명이 사망하는 대참사 발생.  " 나는 살아 있는데 죽음이 보였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오직 살기 위해 그렸다."

< 이젤과 초상화 > 1948

대표작. 1955년 이 그림으로 프랑스 최고의 미술 잡지 <꼬네상스 데자르 매거진> 에서 '전후 예술가 10인' 중 1위 선정.
'1950년대의 뷔페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롤스로이스 타고 성에서 사는 화가.

평생 영감을 주고받은 예술적 동반자인 아내 아나벨(가수)

'1963년 4월 4일. 이것은 나의 유언장이다. 나의 모든 것을 나의 부인 아나벨 뷔페에게 남긴다.'
너무나 완벽했기에 더 극렬했던 따돌림. 
"원래 모든 그림은 추상적입니다. 구상화가 이해하기 쉽다 해도 관객이 그림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추상화, 구상화를 떠나 모든 예술은 추상적입니다."

<브르타뉴의 폭풍 > 1999

< 죽음 > 1999   /   굳어가는 몸으로 6개월만에 스물네 점의 그림을 완성하고 71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다.
 
Egon Schiele  1890-1918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본 비운의 천재 나르시시스트
"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다. 태어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다."
오스트리아 남부 작은 도시 툴른 에서 '철도인'의 가정에 탄생.  아버지가 성병으로 사망  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줌.
'성욕 역시 인간의 본능인데 왜 유독 그것만 금기시하고 숨겨야 하지?"
빈 분리파의 일원이 되어 클림트를 만남.

<발리의 초상> 1912                 /       <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   1912
두 사람은 빈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시골 노이렌바흐에 정착.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

< 가을 해와 나무들 >   1912

< 미결수의 자화상 >  1912

< 가족 >  1918       /     부인 에디트 하름스의 사망 3일 후 스페인독감으로 스물여덟의 나이에 사망.

< Little Tree >

< Field of Flowers >
그림은 화가의 언어입니다. 그림으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바로 화가이지요.
그래서 화가들의 인생을 따라가는 일은, 어쩌면 한 예술가의 언어를 배우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