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어서기도 하는
반복만이 당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 16p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중
우리나라라면 무엇이 좋을까. 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 정상에 거울 하나쯤이 설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거울은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전신이 다 들여다보이는 정도라도 좋겠다.
힘겹게 오른 산 정상에서 하늘과 산 아래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 것도 좋지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거울을 보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도 좋을 것이고 그냥 온몸에 힘이 풀린 채로 실없이 웃기만 한다 해도 좋을 것이고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 다가올 바람에게 말을 걸어도 좋겠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대견해해도 좋을 것이며
행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쓸쓸함에 빠지더라도 난데없이 세워놓은 큰 거울 하나를 통해
우리가 우리 안쪽에 진 빚이 어느 정도인지를 조금은 알아갔으면 한다.
나 자신이라는 산봉우리와
나 자신이라는 풍경과
나 자신이라는 넓이에 대해 조금은 알고 내려왔으면 싶은 것이다
- 39-40p 그 동안 모른 척했던 나 자신이라는 풍경 중 -
하루에 세 번 크게 숨을 쉴 것,
맑은 강과 큰 산이 있다는 것을 향해 머리를 둘 것,
머리를 두고 누워 좋은 결심을 떠올려볼 것,
시간의 묵직한 테가 이마에 얹힐 때까지
해질 때까지 매일 한 번은 최후를 생각해 둘 것
- 44p
당신이 특별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한 일들이 증명해줄 것이고
당신이 의지하고 싶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용기내어 저지른 일이 설명해줄 것이고
당신이 쓸모없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남이 한 말을 영혼 없이 그대로 옮긴 적이 있다면 알게 될 것이고
당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무시하고 가벼이 여긴 수많은 일들이 판결해줄 것이다
당신이 애써서 가장 좋은 시간을 내어준 친구들이, 사랑하는 대신 욕을 남기며 떠난다 해도
당신은 그 친구들을 맨 나중까지 사랑할 것이며
당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젊음이라는 피부가 아니라 세월의 분자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기를 바라며
설령 당신이 어느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대기 하나 남기는 것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 당신을 떠올릴 때
슬픔 대신 어느 믿음직한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나는 바란다.
- 102~103p 언젠가 그때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기는 것으로 중 -
어느 벚꽃이 피는 날에는 벚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숫자만큼을 걸었고
어느날, 폭포 앞에 섰을 때는 물소리를 이길 만큼을 웃었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하지만 너무 많은 걸 보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원하든 . 원하지 않든.
결국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보는 바람에 끝나고 만다
한 사람의 그 너머의 안쪽을 들여다봤을 때 한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그만 울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부위에 있는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상처를 봤다면......그런데 그것이 그토록 싫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또는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것들이어서 그냥
덮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싶어하는 바람에 끝나고 만다.
- 188p 들여다보고 싶은 너머의 안쪽 중 -
나는 누군가가 좋아질라치면 먼저 끝을 생각한다. 맨 끝 말이다.
좋아도 좋지 않아도 끝은 끝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결말 지점을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라 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모든 관계는 시간 앞에서 감히 영원할 수도 없으며 감히 이상적일 수도 없으니 그렇게 끝은 끝인 채로
완성이 되는 거니까.
- 206p 우리 서로가 아주 조금의 빗방울이었다면 중 -
혼자는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혼자여야만 가능한 단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여행이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나를 보호하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내게 애정을 수혈해주며 쓸쓸하지 않게 해주는
당장 가까운 이로부터, 더군다나 아주 작게 나를 키워냈던 어머니의 뱃속으로부터 가장 멀리, 멀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히 믿었던 것들을 검은색 매직펜으로 지워내는 일이다
..............
혼자 있는 그곳은 속깊은 문장을 알려준다. 내가 숱하게 화를 내야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공손하게 손을 모으게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말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만이
혼자의 품격을 획득한다. '혼자의 권력'을 갖게 된다.
- 217p 매일밤 여행을 마친 사람처럼 굿나잇 중 -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의 꼴도 다르다. 누구를 사랑하느냐에 따라 내가 얼마만큼의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또한 누구를 어떻게 떠나보냈는지가 남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성장시킨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
..............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은 '생각한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란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의 연속선'이다.
오죽하면 '사랑'이라는 말의 어원이 '사량' 즉 '생각의 양'이라는 설도 있겠는가. 어떤 경우에도 한 대상이 생각이 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한 사람을 향한 생각이 불쑥 모든 것을 앞질러 덮는 형편 혹은 경로가 사랑이다.
이 화학 작용 앞에서는 누구도 포로가 된다. 감당이 어렵다. 이런 반복을 통해 대상을 가까이 느끼려하고 이내 가지려 할 것이므로 결국 '생각'은 표적을 거느린 '화살'인 것이다.
- 230p. 235p 그림으로 사랑의 모양을 그려보세요 중 -
감나무의 주인은 지나가는 새들,
그리고 이 집의 주인은 고양이.
<당신이라는 안정제>라는 책으로 인연이 된 김병수 선생의 문자 메시지다.
김선생은 제주에 있는 나의 작업실에서 며칠을 지내고 있다. 안 그래도 추워져서 잘 계시나 싶었는데 때마침
도착한 문자이다. 제주 작업실 마당에는 귤낭 여러 그루를 비롯해 감낭 두 그루가 있는데 연둣빛의 감이 열리기 시작해서
붉게 물들 때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감나무에서 감이 다 익어도 차마 그 감을 따지 못할 때가 많다.
탐스럽고 고와서겠다. 그러니 새들의 차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새들이 좋아하면서 몰려드니 나도 부러 가만히 둔다.
- 276p 우리는 각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중 -
칼을 품고 다니는 무사처럼 나는 겨우 도장이나 가지고 다니는 사람인 것 같다. 그 도장으로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인가를
정하고 사랑할 사람인가를 마음 안에 들여놓기도 하지만 그 도장을 사용해 더 이상 피로감 때문에라도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구분하고 떼어낸다.
그런 도장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도장의 인주 색깔이 특별히 진한 것일 뿐. 그것이 나의 '위태롭지만
달콤한 혼자 사는 삶'을 지키기 위한 철학나부랭이쯤이다.
그러므로 '나는 단지 세상을 좀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뿐이다'라고 했던 닉 나이트의 말은 나에게 '나는 단지
세상을 좀더 지독한 혼자로서 바라보는 것뿐이다'로 바뀐다. 지독한 혼자라서 하늘이 유난히 푸르게 보일 것이고,
음악은 저릿저릿하게 스며서 마음은 자주 너덜너덜해질 것이고, 자유는 어떤 무자비함으로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 297p 마음이 급속히 나빠지지 않도록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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