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일인칭 단수 - 무라카미 하루키 -

아라모 2022. 1. 9. 13:22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그 음악을 대체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버드가 나 하나를 위해 꿈속에서 연주해준 음악은, 나중에 생각해보면 소리의 흐름이라기보다 오히려 순간적이고 전체적인 조사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음악이 존재했음을 나는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음악의 내용을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순서대로 더듬어가기도 불가능하다.

만다라 그림을 말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듯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영혼 깊숙한 곳의 핵심까지 가닿는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듣기 전과 들은 후에 몸에 구조가 조금은 달라진 듯 느껴지는 음악- 그런 음악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 67p

 

나이 먹으면서 기묘하게 느끼는 게 있다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한때 소년이었던 내가 어느새 고령자 소리를 듣는 나이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나와 동년배였던 사람들이 이제 완전히 노인이 되어버렸다............,

특히 아름답고 발랄했던 여자애들이 지금은 아마 손주가 두셋 있을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몹시 신기할뿐더러 때로 서글퍼지기도 한다.

내 나이를 떠올리고 서글퍼지는 일은 거의 없지만. - 75p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기는 괴롭지만, 결국 그녀는 내 귓 속에 있는 특별한 종을 울려주지는 못했다.

아무리 귀기울여도, 종소리는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만 내가 도쿄에서 만났던 한 여자는 그 종을 확실히 울려주었다.

그것은 논리나 이론을 따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 혹은 영혼의 훨씬 깊은 곳에서 멋대로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뿐,

개인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 11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