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류시화 -

아라모 2022. 1. 9. 13:00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시인이 언어로 쓴,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는 인생에 다 나쁜 것은 없다는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을 담고 있다.

시인으로 알아들은 사람들 때문에 신앙 공동체에서 쫓겨난 일화, 화장실 없는 셋방에 살면서 매일 근처 대학병원 화장실로 달려가며 깨달은 매장과 파종의 차이, ‘나는 오늘 행복하다를 수없이 소리내어 반복해야 했던 힌디어 수업, ‘왜 이것밖에 주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것만이 너를 저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어떤 목소리, 신은 각자의 길을 적어 주셨으며 그 표식을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 가장 힘든 계절의 모습으로 나무를 판단해서는 안 되며 꽃이 피면 알게 되리라는 진리,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고, 어떤 이야기는 마음에 남고, 어떤 것은 반전이 있고, 또 어떤 것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시인은 단 한 줄의 문장으로도 가슴을 연다.

 

안전하고 확실한 것에만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행성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 12p -

 

어느 현자가 시골을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여인이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왔다.

아픈 아이가 있어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현자가 그녀의 집으로 향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현자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때 사람들 속에서 한 남자가 소리쳤다.

병원 약도 듣지 않는데 당신의 기도가 효과가 있겠소?”

현자가 남자에게 버럭했다.

넌 기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바보 같은 놈!”

그 말에 남자가 분개하며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가 욕설을 퍼부으려는 찰나, 현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 말 한마디가 그대를 그토록 흥분시킨다면, 내가 하는 기도도 치료의 힘을 갖고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현자는 그날 두 사람을 치유로 인도했다.

- 36p

 

아메리카 원주민 중 라코타 수우족은 고통을 겪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신과 가장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아플 때 에고의 껍질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그 사람에게 자신들을 대신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곤 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 사람의 기도가 신에게 가닿을만큼 절실하고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 42p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만약 우리가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은 안다 - 54p

 

단순한 생활과 음식이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나를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게 했다. 그 삶은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 영혼에 관한 일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일과 만남들이 줄어들면서 기쁨은 늘어났다.

사치가 문화를 창조하지만, 소박함은 정신을 창조한다. - 85p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 행운을 가졌는가?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하고 말할 수 있는. - 101p

 

나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가는 감추거나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드러내며, 내가 주장하는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에 대해 가장 잘 말해 준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가장 진실된 나의 모습에 가깝다 - 105p

 

신은 우리의 말을 들음으로써가 아니라 행위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신뢰한다. 내가 설명하지 않는 것을 내 삶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는 코람 데오를 이야기한다. 신 앞에 선 단독자인 너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다. 신 앞에서는 어떤 가면으로도 본연의 모습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코끼리와 개미가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처음에는 개미가 술래가 되어 코끼리가 숨었는데, 몸집이 커서 금방 발각되었다. 이번에는 코끼리가 술래가 되자 개미는 코끼리가 들어올 수 없게 작은 사원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하지만 코끼리는 쉽게 개미가 숨은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개미가 평소의 행동대로 신발을 벗어 놓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 106p

 

플라톤은 영혼의 돌봄을 삶의 기술이라 정의했다.

마음에서 문제를 내려놓는 연습도 영혼의 돌봄에 해당된다. 한 목수가 농장 주택 보수하는 일에 고용되었다. 첫날부터 문제가 많았다. 발을 다치고, 전기톱이 고장 나고.. 시동이 걸리지 않고... 그날 저녁 사장이 집까지 태워다 주는 동안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집에 도착한 남자는 가족을 인사시키기 위해 사장을 잠시 집안으로 초대했다.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남자가 작은 나무 옆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두 손으로 나뭇가지 끝을 어루만졌다. 현관 문을 열 때 그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을린 얼굴이 미소로 밝아졌으며, 달려오는 두 아이를 껴안고 아내에게는 입맞춤을 했다.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나무 앞을 지나가면서 호기심을 느낀 사장이 좀 전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이 나무는 걱정을 걸어 두는 나무입니다. 일하면서 문제가 없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을 집 안의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데리고 갈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저녁때 집에 오면 이 나무에 문제들을 걸어 두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그 문제들을 가지고 일터로 갑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문제들이 밤사이 바람에 날아갔는지 많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 124p

 

마음속에 찾아오는 생각과 감정들을 적으로 여기지 말고 협력자로 만드는 것이 명상의 기술이다. 마음을 관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나는 잠시 화가 났을 뿐이지 화가 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잠시 두려울 뿐이지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며, 잠시 슬플 뿐이지 슬픈 사람이 아니다. 보래 나는 맑고 고요한 존재이다. 우리는 어떤 감정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가 날개의 크기에 상관없이 멀리 창공을 나는 것처럼. 다정하게 맞이하지 않으면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은 어둠 속에 갇혀 괴물이 된다. - 158p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슴 안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슴을 연 채로 살면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슴을 닫은 채로 사는 것만큼 많이 상처받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곳에 무엇을 배우러 왔을까? 사랑이었을까? 우리의 문제는 단 한 가지일 것이다. ‘의 범위를 에게로 한정 짓는 것, 그래서 이외에는 모두 타인이며 타자라고 믿는 것. 반면에 공감과 연민은 우리를 더 큰 로 만든다.

어느 명상 센테에서는 이렇게 기도한다.

내가 가능한 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갖기를, 만약 내가 이 순간에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판단하지 않기를. 만약 내가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면 해를 끼치지 않기를. 그리고 만약 내가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최소한의 해를 끼치지를.’ -173p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다.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 174p

 

"장마철의 좋은 점은 먼지가 하나도 없다는 거야!“

세상을 한번 둘러보라. 완벽한 곳은 없다. 또한 아무리 부정하거나 외면하려 해도 아름다운 것을 한 가지라도 발견할 수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티유는 말한다.

두 사람이 있으면, 사물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있게 된다. 60억의 사람이 있으면 60억개의 세상이 있다.” - 193p

 

내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혹시 그것은 진짜 케사르를 수단으로 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닐까?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고 주장함으로써 나의 에고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많은 경우에 가짜와 진짜는 본래의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의 관점 안에만 있는 주관적인 판단인데 우리가 그것을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고수하는 것인지도.

만약 그 개인적인 관점과 주장을 내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혹시 더 자유로워지지는 않을까?

- 2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