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사물의 철학 - 함돈균 -

아라모 2021. 2. 3. 19:41

 

사물의 철학 - 함돈균 -

질문으로 시작하여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수업

 

일상 사물에 대한 가장 은밀한, 가장 발칙한 체험!”

시스루에서 포스트잇까지 88가지 사물이 장자에서 보르헤스까지 시적 직관과 철학적 성찰을 만나다!

 

가끔 비평가는 자신이 세계라고 말할 때 그 어감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공허하다는 느낌에 짓눌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사물들의 실감 속으로 하강하고 싶어진다.

이 책에서 함돈균은 마치 처음인 듯 사물 하나하나를 다시 사용하면서 세계를 근원적으로 경험해보려 노력한다. 이런 책을 쓰는 데 응당 필요한 꼼꼼함과 기발함도 그는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도드라지는 것은 과감함이며, 그것이 이 책의 개성을 이룬다. 과감한 사유는 고만고만한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자극을 준다. 무뚝뚝하게 예리한, 함돈균다운 책이다. - 문학비평가 신형철 -

 

달력은 이미' 또는 '아직'없는 시간을 지금우리 주변에 시각적으로 현재화하는 사물이다

새로운 시간은 언제나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킨다. 달력은 새로운 시간에 일어날 새로운 일들과 도전을 기대하게 한다

- 55p 시간의 영원회귀 -

 

동일한 몇 종류의 레고 벽돌들을 결합하고 분리하면서 아이들은 자동차와 집과 우주선과 공룡이 실은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저도 모르게 알게 된다. 여기에서 사물들은 다른 것이라기보다는, 비슷한 구성 요소들의 다른 배치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놀이에서 겪은 가장 내밀한 경험은 사물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창조하는 아이들의 기쁨이 아니다. 세상의 무수한 차이들은 표면적일 뿐이며, 실은 같은 것들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지 바로 그것이다.

......

실제 오늘날 분자생물학은 생명 현상을 창조가 아니라, 개별 생물로의 분화 가능성을 담고 있는 분자적 요소들의 배치드러남으로 이해한다.

- 68p [레고] 다른 것들은 어떻게 같을까 중 -

 

사발의 움푹 팬 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내제해 있다노자

높은 산 위에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은, 신전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은 하늘과 절벽을 불러들여 나타나게 함으로써 발생한다.“ 하이데거

- 232p [자전거] 바퀴살은 왜 비어있을까 - 없음의 있음

 

인간의 의지력에 대한 위대하고도 혹독한 니체의 실험도 실은 주사위를 매개로 한 것이었다. 그는 네 운명의 주사위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니체에게서 이 사물은 체념과 포기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내던져진 생을 스스로 의미화하고 긍정하는 능동성의 윤리를 표현한다.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드러난 주사위 숫자가 지시하는 생의 현재를 긍정하고 즐겨라! 불확실성이란 그 자체가 또 다른 길로 난 생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닌가

- 245p [주사위] 운명을 사랑하라 중 -

 

지식(문자)은 출현하는 그 순간부터 고유한 원형으로 존재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지식은 순수하게 그 의미가 보존될 수 없으며, 사후적 해석과 생각의 개입에 의해 오염되고 의미 전달이 지연된다

- 291p [포스트잇] 포스트모던적 노트 중 정주가 아닌 유목의 세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