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알랭드 보통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Ⅰ. 인기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소크라테스(기원전470~399) 진리의 절대성을 추구한 고대그리스의 철학자
인간의 행복은 올바른 지적 인식을 통하여 진리를 실천함(지행합일)으로써 가능하다고.
그가 사형을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갓은 “용기”라는 미덕 때문,, 그 용기마저 지식,
즉 선과 악을 분별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은
끝까지 이성적으로 남을 수 있는 신념을, 즉 비난에 직면할 때면 흔히 보이기 쉬운 병적인 흥분이 아닌 확신을 부여했다.
너무도 명백한 것이라거나 “당연한”한 것으로 선언된 것들 중에서 실제로 그런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는 이 세상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는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기존의 확고한 견해들도 완벽한 추론 과정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종종 몇 세기에 걸친 지적 혼란 상태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여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 34p
소크라테스는 인간 존재란 살다보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 때도 있기 때문에 간혹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레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진실과 인기가 없는 것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를 하나 더 덧붙였다. 곧,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떤 반대에 봉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오류라고 확신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우리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그렇게 하면서 내세운 이유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기가 없는 현상 그 자체에 관심의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인기를 잃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에 주목해야 한다.
공동체의 대부분으로부터 자신이 그릇된 존재라는 비난을 받는다면, 무척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을 초기하지 전에 우리는 먼저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논법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부여할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그런 의견이 나오게 된 사고방식의 건전성이다.
- 44p
Ⅱ.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에피쿠로스(기원전 342~270)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목표”. 그의 쾌락은 욕망을 절제하고 친구들과 안온하고 겸손 한 생활 속에서 자족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 즉 “올바른 인식”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쾌락 이었다.
에피쿠로스의 시각에서 보면, 철학의 임무는 우리 각자가 원인 모를 우울증과 욕망의 충동들 해석하도록 도와주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때에 그릇된 계획을 세우지 않도 록 돌보아주는 것이었다. 철학은 우리의 고통을 합리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우리의 병을 치유
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77p -
Ⅲ.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세네카(기원전 4~기원후 65) 네로의 가정교사. 네로의 명령으로 자진한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이성은 세네카에게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 이라고 요구했다. 그는 준엄한 도덕성과 의무의 준수를 모토로 그의 사생활은 안락과 부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성에 따른 아파테이아(당당하고 유연한 심경)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고.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세계의 진정한 모습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좌절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런 좌절에 수반되는 유해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어야 한다.
- 112p -
분노보다 더 신속히 광기에 이르는 길은 없다. 분노한 사람들은 ... 마치 미친 사람이 자신의 광기를 부인하듯이 자신이 분노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자식을 죽어라 꾸짖고, 자신을 정신박약자로 끌어내리고, 가정에 저주를 퍼붓는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적이 되고.. 법을 무시하고 모든 일에 주먹다짐을 한다...... 병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병이 그들을 엄습했는데, 그 병은 다른 모든 악을 압도한다 -세네카의 분노에 관하여-
그리고 세네카에 따르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존재 유형에 대해서 품고 있는 위험천만한 낙천적인 견해들이다.
- 113p -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것을 세네카의 <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152p -
Ⅳ.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몽테뉴(1533~1592)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한 에세이스트. 파스칼과 더불어 프랑스 대표적 모랄리스트. 그는 그때까지 이성의 힘이 주도하던 철학 세계에서 인간의 벌거벗은 자연의 모습, 곧 육체와 본능의 힘을 해방시켰다.
학문보다 달콤한 일거리는 없다. 학문은 물질의 무한성, 숭고하고 광대한 자연,하늘,땅,바다 같은 것들의 본질을 우리에게 드러내주는 수단이다. 학문은 우리에게 동정, 절제, 애정의 위대함을 가르친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어둠으로부터 구해내고 영혼에게 모든 것을, 이를테면 높고 낮은 것,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학문은 우리에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것은 불만이나 원통한 마음을 품지 않고 인생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수상록 中 - 160p -
아직도 자연의 중요한 법칙들의 달콤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나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묘사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그대들에게 분명히 밝힐 수 있소 - 수상록서론 -
어떤 인간도 정착할 수 없는 높기만 한 철학의 산봉우리들이 그리고 우리의 관습과 힘을 넘어선 곳에 있는 규율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인간이 자신과는 엄청나게 다른 존재의 기준에 맞추어서 자신의 의무를 정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 -수상록 Ⅲ - -177p -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현명한 사람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이 아무것도 므른다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수상록 Ⅱ-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조리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교육 목적이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선뜻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그 사람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아는가?“ ”그 사람은 시와 산문을 쓸 수 있는가?“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은 더 선해지고 현명해졌는가?“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채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 분투한다. -수상록 Ⅰ - 207p -
어려운 책들은 예외없이 우리로 하여금 책의 내용이 명쾌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자를 무능하다고 판단하게 하든지, 아니면 책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신을 우둔하다고 결론 내리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몽테뉴는 우리에게 차라리 저자를 책망하는 쪽을 택하도록 부추겼다. 이해 불가능한 문체는 슬기로움보다는 게으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용의 부실함을 감추고 있을 것이다. 말할 것이 없다는 난해한 문장이 완벽하게 가려주는 것이다.
난해함은, 말하자면 학문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학문의 부실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마법을 걸어 불러내는, 그리고 인간의 어리석음이 그 보상으로 손에 쥐기를 갈구하는 한 닢 의 동전과 같다 <수상록 Ⅱ > -214p-
토마스 아퀴나스의 “제1의 원인”이란 무엇인가? ( 신이 있음 )
Ⅳ.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1788~1860)는 끝없는 욕망의 연쇄로서의 생은 고통이며 그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죽음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는 맹목적인“생에 대한 의지”가 인간 종의 존속을 위해서 작용한다고 파악함으로써 사랑이 생을 지배하는 이유를 발견한 철학자가 되었다.
행복은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으며, 삶을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무의 지복한 휴식 가운데 쓸데없이 돌발한 하나의 에피소드로 보아도 무방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일종의 오류임이 틀림없다. -쇼펜하우어-
진실은....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어떤 존재가 만든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보통사람들의 믿음이 교황의 믿음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처럼 보통사람들도 철학에 진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도, 특히 철학을 강의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의 구성을... 이를테면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인간 종의 존속과 특별한 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이론이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생에 대한 의지가 우리 인간의 행복보다는 의지 그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섹스 직후 두 남녀에게 종종 엄습하는 나른함과 슬픔에서 아주 명확하게 감지된다 .
- 260p -
그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그리고 삶의 불행에서 그는 이제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보다는 전체로서 인류의 운명을 더 돌아볼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받는 존재로서보다는 세상을 아는 존재로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Ⅵ.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강자의 도덕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초인”를 “힘에의 의지”의 상징으로서 구체화한
니체(1844-1900)는 행복은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으며, 삶을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
내가 쓴 책들 중 한 권을 뽑아 손에 쥐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이든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장 귀하고 비범한 선택이 될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 독자가 책을 읽을 때 신을 벗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 사람을 보라 >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 고통을 감내하는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조화처럼, 달콤하고 거칠고, 예리하고 단조롭고, 부드럽고 떠들썩한, 다양한 음색
분만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음색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어느 음악가가 한 음색만을 좋아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음악가는 모든 음색을 활용하여 조화를 일구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역시 삶을 구성하는 선과 악을 가지고 그렇게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 니체가 존경한 수상록 마지막장 - 301p -
존재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성취와 가장 위대한 즐거움을 일궈내는 비결은 위험을 감수하며 사는 것이다! 도시들을 베수비우스산 기슭에 짓도록 하자! -<즐거운 학문> -31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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