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좋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중
거대한 것과 시시콜콜한 것을 동시에 바라보며 살고 싶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책임해지지 않으면서 하루하루의
생활도 잘 살아나가고 싶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매일매일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들고, 또 새것 같은 하루를 기대
하면서 눈을 뜨고 싶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그렇지 않는 날도 있다. 좋은 날을 즐기는 법과 그렇지 않은 날을 견디는 법을 배우며 살고 있다.
이 책에 쓴 이야기들은 모두 그런 이야기들이다.
옷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제일 잘 어울리는 옷 서너 벌만 매일 돌려 입으면서 살고 싶다.
할 일이나 열심히 하며서 살고 싶다. 그렇게 사는 인생은 얼마나 단순하고 우아하냐는 말이다 .
그러나 문제는 아직 제일 잘 어울리는 옷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옷을 고르고, 이보다 더 괜찮은 모습일 나를 상상하고,
그런 내 모습을 어필할 짬이 없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더 나은 나'를 찾아 헤매는 일에도 이젠 지쳤다.
나도 할 만큼 했단 말이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이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간혹 유니클로의 새 옷이 줄 수 있는 약간의 반짝임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건 것들을.
- 31p 1길. 60이 되어서도 장화를 신어야지 중에서 -
내가 자라면서 갖게 된 마음속의 스승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누더기도사 같은 사람들. 어깨에 힘을 뺀 사람들. 욕심과 두려움에 눈멀지 않았던 사람들. 느슨하지만 날카로운 사람들.
세상 속도보다 조금 느려서, 때로는 그 속도를 비웃어서 출세와는 거리가 있던 사람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고, 봄이 오면 또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 자연스럽게 살던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이 멋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세상은 멋있는 사람을 끝내 내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 49p 2길. 내일도 별일 없기를
나는 늘 더 뛸 수 있을 것 같을 때, 한 바퀴 정도 더 뛰어도 될 것 같을 때 멈춘다. 어떤 이는 더 뛸 수 없을 것 같을 때 한 바퀴를 더 뛰어야 능력이 향상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나는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려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오래오래, 혼자서, 조금씩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
허리와 팔뚝에 근육이 있는 씩씩한 50대 여자가 되고 싶다.그러러면 40대 내내 달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아픈데 없이 건강해야 할 것이다. 달리러 나갈 수 있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여유도 중요하다. 집안에 우환이 없어야 할 것이고 이런저런 일들로 삶의 의욕이 저하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대에는 별일이라곤 없는 내 인생이 망작 같기만 했는데, 중년이 되어버리고 나니 별일 없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별일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조심 살고 있다. 오늘도 별일 없고 내일도 별일 없기를. 오늘도 달리 수 있고 내일도 달릴 수 있기를.
- 53p 2길. 내일도 별일 없기를 중 달리는 사람 -
선을 긋는 문제에 대해 존 버거가 쓴 유명한 문장이 있다.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존 버거.<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중에서
- 151p 4길. 걷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 중 단호한 문장, 모호한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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