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
여행은 내가 깨지는 시간이다
나의 고정관념과 어리석음이 깨지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깨어짐은 통쾌하다.
작가 제이미 제파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서
‘세상애는 그곳을 여행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행지를 변화시키는 이상하고도 놀라운 장소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 여행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알지 못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지만 신앙심이 그리 깊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도청에서 신을 만난다.
신은 길가에 핀 한송이 꽃, 5월의 나뭇잎, 골목에서 뛰노는 어린아이의 눈 속에 있었다.
산은 늘 나에게 가장 알맞은 때, 알맞은 방법으로 손을 내밀어 주셨다. 산티아고 길을 걸은 많은 사람들이 ‘길이 나를 불렀다’고 말했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 같지만 ‘길의 부름에 내가 응답한 것’이라는 말이다. 흰나비를 따라 걸으면서 이 길이 나를 불렀다는 말을 실감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길을 걷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 99p 길위에서 -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여행이 나를 이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 여행의 주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길을 잃는 것도 그런 경우다.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서 내 여행을 원치않는 방향으로 틀어 놓는다. 그때는 여행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나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여행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여행이 되는 순간이다. 신비로운 건 그 순간이 전혀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열리는 또 하나의 출구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쾨니히스제로 오는 길을 잃었기 때문에 난 언젠가 이곳에 꼭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평범한 주택 같았던 이 산장도 어떤 멋진 호텔보다 더 마음을 잡아끈다. 이 짧은 만남의 갈증이 내 여행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삶도 그렇다. 가끔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 도무지 인정할 수 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순간도 있다.
분명 내 인생인데 내 운명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느낌, 내 운명을 다른 누군가가 움켜쥐고 흔드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의미 없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을. 존재의 뿌리가 흔들렸던 날들 조차 나를 키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운명의 주인은 운명이지만 어떻게 살 것이지에 대한 선택은 오롯이 내 몫이다. 내 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든 나는 내가 원하는 살을 살 것이다.
- 209p 네 멋대로 가라 -
스티브 잡스가 “커넥팅 도츠”라는 말을 했다. ‘인연은 낯선 곳에서 시작되어 나도 모르는 곳으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이 발걸음이 내일 또 어떤 곳으로 나를 이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 259p 별처럼, 들풀처럼, 강물처럼 -
늙어가는 나를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그리 화사한 젊은 날을 보내지도 못했으면서 마흔 살을 넘으면 여자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더 이상 기대 할 것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 내가 지금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직업인으로, 여행가로, 한 가정의 주부로 어느 때보다 더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고 사람을 보는 시선은 더 따뜻해졌다. 글맛은 익어가고, 사진은 더 깊어지고 있다.
10년 뒤에도 나는 수시로 배낭을 메고 떠날 것이며, 낯선 길을 천천히 걷고 있을 것이다. 오후의 햇살이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운 나뭇가지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댈 것이다.
밤이 되면 귀에 돋보기를 걸친 채 책을 읽고, 짧은 글이라도 쓰다가 잠이 들 것이다.
몸은 점점 더 늙어가고, 반갑지 않은 병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길 위에서 그것들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도전했고 내 삶을 치유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는 지금,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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