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9 5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 22p 저는 당신의 편지를 받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려드릴 만한 소문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당신 표현대로 '쓸데없는 질문'들에 답하는 게 편합니다 - 127p 도시 아담스가 줄리엣에게 쓴 편지 중 - 그렇게 늦은 밤이면 엘리자베스는 저에게 건지 섬과 북클럽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에겐 마치 천국같이 들렸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불결한 냄새와 병균이 떠다니는 눅눅한 공기 속에서 숨을 쉬어여 했지만, 엘리자베스가 ..

아홉번째 파도 - 최은미 장편소설

서상화의 손이 송인화의 손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송인화는 머리를 묻은 그대로 숨을 멈췄다. 서상화의 손은 놀랍도록 차갑고 축축했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닿는 순간 송인화는 자신이 다른 세계 하나와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서상화라는 세계. 송인화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며 손에 힘을 주었다. -198P 그날 서상화가 아빠의 얼굴에서 본 것은 멸시받는 게 만성이 된 사람의 표정이었다. 누군가가 일터에서 매일매일 오랜 세월에 걸쳐 인격적 모독을 당한다는 것. 그게 내 가족이라는 것. 그 사실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휘저어놓는지를 서상화는 무가 뭔지 모르는 채로 먼저 느껴버렸다 - 225P 서상화는 그동안 왜 엄머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얼굴이 안 떠오르는 순간이..

저만치 혼자서 - 김훈 소설 -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김소월의 시 중 전처와 살 때는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었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의 다툼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것이 사소하지 않았고, 무의미한 것들이 쌓여서 무의미하지 않았다. 화해하려는 노력이 더 큰 싸움을 일으켰다. 그 여자의 결론은 '지겹다'는 것이었고, 나는 나의 지겨움으로 그여자의 지겨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 125p 대장 내시경 검사 중 - S교수는 주례사에서 - 결혼은 물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신랑 신부가 안정된 수입의 바탕을 확보하는 일에 힘쓰기를 바란다. 사랑이 아니라, 연민의 힘으로 살아야 오래 살 수 있다. 라고 말했다. 하객들 중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월롱동은 '물적 토대'는 먹고살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