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죽교
"나는 우리가 쓰는 말과 문자, 흰 옷을 입은 기상 등 깨끗하고 고상하고
착한 우리 민족성을 그리고 싶습니다." - 고암 이응노.
알고 보니 시대가 낳은 사업 천재였다고.....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한국추상화가로.. 신사실파.
말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가족의 역사는 도도히 흐릅니다.
섬이야기 .1940년. 80.3* 100
영원한 노래 1957년. "고국을 향한 사랑의 노래" 162.4*129
달 두개 1961년 130*193
항아리 1955년 65*80 "고운 너 그리고 나"
나무와 두 여인 1962년 130*89 "이들처럼 나도 그림을 그린다"
01.빨레터 1950년대 50.5*111.5
길가에서 1954 107.5*53 "신라인이 탑을 쌓듯"
목련 1960년 41*53 "겨울을 뛰어넘어 봄이 오기를"
황금비 1982년 34.5*47 "여인의 눈으로 말해요"
생태 1951년 51.5*87 "추하고 아름답다"
"뱀이란 주제가 내 생명과 예술을 연장시켜 준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비 개인 뒤 1962년 150*104.5
자살의 미 1968년 137*95 "수선화가 갈리기 일보직전"
사군도 1969년 198*136.5 "뱀이여 신명 나게 춤추어라. 살을 풀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년 130*162 "고독, 난 그것을 느껴야만 해!"
" 두 사람이 사랑할 때는 두 사람의 고독이 합쳐진 더 큰 고독이 있고, 혼자일 때는 울 수도 없는 고독이 있을 뿐이다."
"나의 10대 시절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쇤베르크의 발견에 있을 것이다.
쇤베르크는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서양음악에서의 고질적 계급을 소멸시킨 전위예술가이며 음악을 소리개념으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콜라주 기법이 오일페인팅을 대신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라 생각한 남준은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미지의 그것'을 만들어 가능함을 증명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당황하고 어이없어 했지만, 결국 사람들은
'그것'을 '비디오아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예술은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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