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카를로 로벨리 -

아라모 2023. 1. 22. 17:46

 

나에게 과학이란, 변화와 모험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즉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게 해주면서도, 동시에 그런 삶이 내 주변 환경과 부딪혀 일어나게 될 갈등을 최소화 시켜주는 일종의 타협점이었다. 게다가 과학을 통해 세상이 높이 평가하는 분야에 속하게 되었다.
나는 수많은 지성적, 예술적 업적이 비슷한 상황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과학은 잠재적 이단아들을 위한 일종의 피난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역동적 평행 상태에 있는 우리 사회는 이런 이단아들을 필요로 한다. 한편에서는 권력이 안정적이고 불변하는 사회를 수립하고 기존의 것을 무너뜨릴 모든 무질서함을 배척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변화와 정의에 대한 갈망이 이 사회를 바꾸고 발전시켜 진화하게 햐려는 까닭이다. 변화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간 문명은 결코 현재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13p

아인슈타인은 순식간에 앞서갔다. 먼저 고전역학에서의 움직임, 즉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물체들이 보이는 움직임에 대한 설명을 상대화했고(특수상대성이론), 그다음에 중력이 있는 상태에서의 움직임으로 넓혀갔다.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제는 물체가 공간속에 어느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고, 다른 물체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그 물체의 위치를 설명할 수 있으므로 '상대적'이다. 또한 중력이론으로서 탄생한 이론이지만, 공간 개념을 바꾸고 물리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전반적으로 뒤흔들어놓은 만큼 그 중요성이 일반화되었으므로 '일반적'이다 - 36p

나는 과학과 철학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과거 철학은 과학의 발전, 특히 이론물리학의 핵심 개념의 발전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했다. 굵직한 사례만 생각해보더라도 갈릴레이, 뉴턴, 패러데이, 맥스웰, 보어, 하이젠베르크, 디렉, 아인슈타인 등은 모두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토록 놀라운 개념적 발전을 이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의 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개념적, 철학적 문제들이 여러 질문을 제시하고 새로운 관점들을 열어주는 중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철학적 관념이 지닌 직겁적인 영향력은 뉴턴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의 탄생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난다. -75p

그러나 나는 이처럼 세상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사고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고의 힘은 '실험', '수학','벙법론' 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은 과학적 사고의 특징, 즉 스스로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것은 자신이 확언한 내용까지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의 신념은 물론 가장 확실했던 신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대에 올리는 능력이다. 과학의 핵심은 변화에 있다. - 81p

인간은 각자의 생각에 매여 있으며 그 생각을 쉽사리 바꾸려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밑에서 지구를 받치고 있는 존재는 없다는 주장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럼 지구는 왜 떨어지지 않는단 말인가? 실제고 아낙시만드로스에게도
당연히 이러한 질문이 돌아왔다. 왜냐면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아낙시만드로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과학자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낳은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이다. 공간 속에 떠 있는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낸 그의 역량은 어쩌면 과학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최초의 사례이자 가장 훌륭한 사례일 것이다. 과학이 관찰과 합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과학은 확립된 관념과 설명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며, 더 효율적인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과학이 지닌 바로 이 몽상의 힘에 늘 매료되곤 한다. - 89p

세계의 시간ㅇ느 그 안에서 물체들이 변화하는 절대적 '상자'가 아니다. 시간은 각각의 물체에 따라 고유하게 나타나며 각 물체의 움직임에 종속되어 있다. 단 하나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점은, 각 시간 사이의 차이가 너무나 미미해서 인간의 눈으로는 관측할 수 없다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매우 반 직관적인 개념이긴 해도, 시차는 실제로 존재한다.
시차에 대한 구체적인 실험이 실제로 이뤄졌으며 (여러 대의 초고속 항공기에 초종밀 시계를 장착한 후 각각의 시간을 확인했다.) 매번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초고속 항공기에 장착됐던 시계를 회수홰보니 각각 서로 다른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두 시계가 다른 속도로 운동할 경우 시간이 달라진다는 시차의 기본족인 사실을 처음 주장한 것은 아인슈타인이었다. - 138p

과학이론의 위대한 발전이 내놓은 여러 결론은 대체되기 일쑤였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케플러의 법칙은 틀린 것이 되었다. 또한 이 뉴턴의 만유인력법칙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로 손꼽혀왔지만 수성의 움직임은 이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관측됐다. 이후 상대성이론이 등장해 뉴턴의 법칙을 수정하였고 나아가 블랙홀, 빅뱅, 중력파 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제는 상대성이론마저도 양자효과가 강한 차원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들의 유효성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법칙들을 '역사'로 여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야말로 역사가 될 수 었을 것이다. - 157p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짐작하고 있는 내용을 확실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물리적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미 확립되어 각 분야에서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는 극소수의 기초 이론들의 내용뿐이다. 물론 확립된 이론과 사변적 이론 사이에 흐릿하게 그어져 있는 경계선이 계속해서 수정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경계선이 없어도 된다고 할 수는 없다.         194p

 

세상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한 걸음 도약할 때마다 늘 그 뒤에는 커다란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 예는 무수히 많다. 현대 공학기술은 달의 궤도를 예측한 뉴턴의 계산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농업 분야의 녹색혁명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유전 연구 연구에서 출발했다. 또한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빛의 성질에 대한 맥스웰의 연구가 낳은 뜻밖의 산물이었으며, 컴퓨터는 20세기 원자라는 무미건조한 물체에 대한 연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GPS 시스템 역시 시간의 성질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궁금증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작동될 없었을 것이다. - 199p

플라톤은 진리를 찾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수많은 노력 끝에 이름과 정의, 시각과 감각 등 하나하나 얻어진 요소들이 서로 마찰하고, 호의적인 시험과 시기심 없는 논의를 거치고 나면, 비로소 이들 각각의 위에서 인간의 힘이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강렬한 지식과 지성의 빛이 불현듯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206p

 

과학과 민주주의는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지역에서 탄생한 만큼 분명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고 다른 이들을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라는 볼테르의 말은 민주주의의 핵심이 동시에 과학적 방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

'과학적 이해에 열린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결국 혁명적이고 전복적인 사고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반항으로 가득했던 나의 젊은 시절은 결국 언제나 전복적인 과학적 사고라는 피난처를 찾았던 셈이다 '      -207p


이미 알려져 있듯이 '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 자체도 그러하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의 제목에 등장하는 행성의 회전, 특히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의 회전을 의미하는 단어였던 'revolution'이 지금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혁명'들이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에 암묵적인 경의 를 표하게 될 정도로 이 새로운 세계관이 주는 영향력은 너무나도 강력ㄹ했던 것이다. - 208p

나는 이탈리아인이지만 프랑스인이고 유럽인이기도 하다. 동시에 세계시민이 되고 싶다. 이 두 정체성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풍요롭게 만든다. ...........
유럽은 공통의 꿈을 향해가는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공통의 꿈이란 바로 대화가 폭력과 권력을 이기는 공유된 사회를 가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과학을 통해 배운 것은 단 하나의 현실 세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은 항상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며, 우리의 눈앞에서 계속 변화하는 존재이다.
지금의 세상을 만든것은 기존의 관념에 맞서는 이전 세대의 반란이며, 다르게 생각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현실은 그들의 성취된 꿈이다. 그러니 미래를 겁낼 이유가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항하며, 다른 세계를 꿈꾸고, 그것을 추구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2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