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그 사랑 놓치지 마라 - 이해인 -

아라모 2022. 9. 28. 19:19

수도원에서 보내는 마음의 시 산문

 

귀로 듣고 몸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고 전인적인 들음만이 사랑입니다

모든 불행은 듣지 않음에서 시작됨을 모르지 않으면서

잘 듣지 않고 말만 많이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네요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외칩니다

들어라 들어라 들어라

하루의 문을 닫는 한밤중에 나에게 외칩니다

들었니? 들었니? 들었니?

   <듣기> 작은 기도 중.       -67p

 

싫어 하고 네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은 나도 네가 싫다

미워 하고 네가 말하는 순간은 나도 네가 밉다

절대로 용서 못해  하고 누군가에게 네가 말하는 순간은 

나도 너를 용서할 수가 없다

우리를 아프고 병들게 하는 그런 말 습관적으로 자주 하는 게 아니었어

내가 아프고 병들어 보니 제일 후회되는 그런 말 

우리는 다신 하지 말자

고운 말만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라잖니

화가 나도 이왕이면 고운 말로 사랑하는 법을 우리 다시 배우자

      <어떤 고백> 희망은 깨어 있네 중   - 103p

움직이지 않고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우리 집 항아리들

우리와 함께  바다를 내다보고 종소리를 들으며 삶의 시를 쓰는 항아리들

간장을 뜨면서 침묵의 세월이 키워준  겸손을 배우고

고추장을 뜨면서 맵게 깨어 있는 지혜와 기쁨을 배우고

된장을 뜨면서 냄새나는 기다림 속에 잘 익은 평화를 배우네

마음이 무겁고 삶이 아프거든 우리 집 장독대로 오실래요? 

  <장독대에서> 작은위로 중      -  141p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천양희,<사람의 일>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중        -  187p

 

우리 삶은 늘 찾으면서 떠나고 찾으면서 끝나지

진부해서 지루했던 사랑의 표현도 새로이 해보고

달밤에 배꽃 지듯 흩날리며 사라졌던 나의 시간들도

새로이 사랑하며 걸어가는 여행길

어디엘 가면 행복을 만날까

이 세상 어디에도 집은 없는데......

집을 찾는 동안의 행복을 우리는 늘 놓치면서 사는 게 아닐까 

<여행길에서> 서로 사랑하면 언재라도 봄 중      -  1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