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친애하고, 친애하는.

아라모 2021. 11. 28. 15:59

친애하고, 친애하는 - 백수린 소설 -

 

딸은 엄마가 나아간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우리라는 단어 안에 머무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

 

어쩌다 출퇴근 시간에 보는 수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 쪽으로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상의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 26p

 

이 일을 기억할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이다.

정상적인 형태의 행복이라는 관념이 허상일 뿐인 것처럼.

물론 타인의 상처를 대하는 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 120p

 

나는 아랫배를 노크하는 것 같은 규칙적인 태동을 느끼며 할머니가 기억하는 (......)

여름을 상상했다.

그런 완벽한 여름의 어떤 날,

연노란색 태양이 아직 머리 꼭대기에 있었을 때,

달궈진 모래를 맨발로 밟고 걷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옷을 벗고

바닷물로 뛰어드는 알몸의 여자와 그 옆에 서 있던,

세월이 좀 더 흐르고 나면 그런 엄마가 부끄러워지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 여자아이를 - 126p

 

누군가의 엄마로서 앞서 살다 간 여성의 일생을 곰곰이 회상하기에 가장 절실한 때란

엄마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한 때일 것이다.

이 소설은 그 물음에 대해 엄마란

사랑의 한계를 알면서도 끈임없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자문하며 실천하는 존재라고 답하고 있는 듯하다.

 

딸 또는 아래 세대의 여성은

엄마 또는 위 세대 여성이 용기 있게 내디뎌 나아간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가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며 시연해 보인 것이

자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자유로웠다고 회고되는 엄마의 바다 건너에서의 유학생활은

오래전 할머니의 수평선을 향한 달리기로부터 잉태됐다고 할 수 있다.

또 남성에게 편향적으로 할당돼 있는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기 위해 분투해온 엄마의 삶은

다음 세대의 여성인 내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실험해볼 수 있는 든든한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할머니 - 엄마 - 로 세대를 유전해 내려올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염원하고 또 몸소 실현해 보이기를 주저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

이렇게 읽을 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자유의 가능성을 낳는다는 말과 같아질 수 있다.

자유라는 추상을 향한 여성의 이어달리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이 소설은 마치 바통처럼,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전달돼야 할 친애의 작은 역사로 남을 것이다.

- 신샛별의 작품해설 중 140p-

 

이렇듯 기본적으로 <친애하고, 친애하는>3대에 걸친 엄마와 딸의 이야기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만 읽히길 원치 않는다.

나는 이 짧은 소설이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삶과 죽음, 상처와 용서, 궁극적으로는 다정하고 연약한 인간들을

끝내 살게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

- 147p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