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소설집

아라모 2021. 11. 28. 15:49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김영하 소설 (13편의 단편)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몰래 빌려온 것만 같은,

그런 시간

 

타락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별다른 이유가 없다.“

우리의 지금을 비난하려는 사람들에게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그러다가 수많은 빗금들이 쳐지고 얇게 슬라이스 되어 청량하게 공기 중을 부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여행하고 싶지 않아도 어딘가로 계속해서 떠나는 시간을 살게 되겠지 그것도 별로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우린 머무르는 듯 머무르지 않을 거고 없는 듯 계속 있을 거니.

 

삶이란 별게 아니다. 젖은 우산이 살갗에 달라붙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자 한결 견딜만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녀는 그 문구를 계속 되뇌었다. , 적은 우산, 살갗, 참고 견디다.....

 

손님에게 언제나 친절하도록 교육받은 저 감정노동자들만 노리는 치들이 있다. 그들은 시계를 골라달라고 말하기도 하고 전에 산 걸 들고 와 바꿔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정에게 말을 붙인 후에 노골적으로 치근덕거린다. 이 거머리들의 특징이 바로 뻔뻔함이다.

잘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게임에선 뻔뻔한 자들의 성공 확률이 더 높다. 뻔뻔하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 내놓고 시작한다는 것인데 상대가 그 뻔뻔함을 호응하기만 하면 거래는 그 자리에서 성사된다. - 164p -

 

사람들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하는 소설도, 사실은 독자의 깊은 무의식 속에 어떤 인상을 남겨놓고 퇴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리고 그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잘 쓴 소설의 경지예요.

누군가의 백일몽 속에 조용히 들어왔다가 사라지는 것, 그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였던 나의 존재가 혹여 방해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것.

어떤 인상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 -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