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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끝끝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기적 같은 일에 대하여.
누구나 외롭다.
외로움을 마주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처음엔 내 안의 빈 틈이 채워질거라는 기대로 시작했을 것이다.
수많은 연인들이...부부들이.
- 내 여자의 열매 -
나는 홀린 듯이 싱크대로 달려갔다. 플라스틱 대야에 넘치도록 물을 받았다. 내 잰걸음에 맞추어 흔들리는 물을 왈칵왈칵 거실바닥에 쏟으며 베란다로 돌아왔다. 그것을 아내의 가슴에 끼얹은 순간, 그녀의 몸이 거대한 식물의 잎사귀처럼 파들거리며 살아났다. 다시 한번 물을 받아와 아내의 머리에 끼얹었다. 춤추듯이 아내의 머리카락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내의 번득이는 초록빛 몸이 내 물세례 속에서 청신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체머리를 떨었다. 내 아내가 저만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그때까지 내가 욕망해온 것은 햇빛뿐이었습니다.
오랜 병석에서 처음으로 몸을 일으킨 한 사나이가 있다면,
기름진 음식이나 여자의 부드러운 육체보다
먼저 그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햇빛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언제나 그렇게 배고픈 얼굴이로구나, 하고 옛 스승이 나에게
탓하듯이 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스승의 눈은 평소처럼 형형하게 안광을 번쩍이는 대신
물끄러미 창 너머의
먼 산머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허기지지도 포만하지도 않은 쓸쓸한 눈길이
내 움푹 팬 빰을 비껴 지나가는 것을,
나는 잠자코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외면하였습니다.
- 흰꽃 313p -
……사람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해. 몇십 년이 걸릴 것 같지?
최소한 오륙 년은 걸릴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이삼 년이면, 빠르면 육 개월이면…… 사람에 따라서는 집중적으로 두세 달이면 끝나.
어떻게 하느냐면, 그를 바쁘게 하는 거야.
당장이라도 수십 년 동안의 잠에 곯아떨어지고 싶어 할 만큼 피로하게 하고,
그러나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게 하는 거야.
쉬더라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주 조금만 쉬게 하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굴욕당하게 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수백만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도시,
수백만의 피로한 인간들을 뱉어내는 도시에 대한 영화야.
제목은 ‘서울의 겨울’이라고 붙이겠어. 겨울뿐인 도시……
내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려 했던 도시를 위한 영화야. - 「철길을 흐르는 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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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상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계절이 순환하듯 무연하고 순한 흐름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생명과 죽음이 서로의 경계를 넘어설 때
무언가 부서지고 꺾이는 탈인간화된 느낌이 어딘가 서늘하게 남는다.
생명이 물질로 되돌아갈 때 숨이 끊어지는 기척과,
다시 태어날 때 내는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품은 선연함이 묘하게도 닮았기 때문일까.
생명보다는 물질에 가까울 흰 뼈가 왕성하게 계속 가지를 뻗어나가듯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기 때문일까.
한강의 소설은 약하고 연한 살성과 물질인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다.
- 문학평론가 강지희 -빛을 향해 가는 식불의 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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