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 김시선 -

아라모 2021. 10. 14. 20:28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어릴 때부터 정해준 대상을 사랑하며 산다. 판사, 검사, 의자 아니면 선생님. 흔히 돌잡이 상에 오르는 몇몇 직업들. 그러니까 우리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순간부터, 약혼자가 정해진 셈이다. 이후로 학원을 다니고, 다양한 대회에 출전해 상을 타고, 성적을 쌓는다. 이 과정이 그 대상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과정보다 쟁취하는 방법에 몰두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의심하는 시가가 온다

내가 정말......................사랑하는 게 맞는걸까?’

프롤로그 중 7p -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것,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근거 없는 용기가 생긴다. 그 용기와 믿음은 다음 행동의 근거가 된다.

11p -

그러니까 우연의 과정은 또 다른 우연을 만들 뿐이지, 거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지나고 보니 의미가 생긴 것뿐이다 13p -

 

PART.1 영화가 위로가 되는 순간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의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쫓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보라라는 시구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죽음이 다가올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체리 향기로 표현된 삶의 단맛을 느낀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말하자면<체리 향기>는 바디의 여정을 통해 그 시구를 시각화한 것이다. 한 줄의 시구가 어떻게 영화로 표현됐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이 영화에 깊이 빠진 이유는, 죽기 위해 애쓰는 바디의 모습에서 어느 날의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디는 왜 죽으려고 했을까?’ 영화는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가. 나 역시 그렇다. 죽음의 이유는 죽음의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노인 바게리처럼 누구나 살면서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죽을 이유에는 무게가 없다 19p -

 

행복은 상대적인 감정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보다 좋은 환경에 있다거나 누군가는 이루지 못한 것을 내가 이룬다면, 그게 행복일 거라 믿었다. 세상은 그걸 숫자로 표현한다. 1, 1, 100만 구독자, 지금 생각해보면 그 행복은 더 좋은 환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 곧바로 깨질 행복이었다. 그러니까 상대적인 평가로부터 얻은 행복은 영원하기 힘들다. 32p -

 

 

PART3. 영화는 사람입니다.

 

박대표 아저씨는 이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영화의 역사가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영화가 아니라 새로운 관격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자신은 그저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그런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131P -

 

 

PART4. 하드보일드 세계에서 영화로 살아남기

 

그러니까, 영화는 막 이렇게 이유를 찾는 겁니다. 이유를 찾다가 ! 이런 정서구나라고 깨닫고, 관객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장률 감독은 자신의 의도보다 영화 관람자의 해석을 더 존중했다.

나 역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순간부터 감독의 것이 아니라 관객의 것이라 믿는 쪽이어서 그 말에 공감했다. 161P -

 

영화는 그게 사실이야혹은 그게 맞아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느꼈는가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많이 봤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인가가 더 중요하다. 진심이 되면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남들이 그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사랑한다는 사실이 더 소중해지니까. 원래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눈먼 바보가 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다 그런 상태에 빠진다. 164P -

 

 

PART5. 시선이 머무르는 곳

 

"언제 찍을 거예요?“

아름다운순간을 보면 어떨 때는 안 찍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눈표범은 관심을 바라지 않고, 이들은 카메라로 그 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 장면과 대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우린 아름다운 순간을 인터넷에 남기려고 애쓰지만, 정작 우리가 아름다운 순간은 카메라 뒤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175P -

 

그렇다고 마음 근육을 키우기 위해 데이비스처럼 무언가를 분해하고 파괴할 필요는 없다. 근육을 키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주변에 관심을 가지는 거다. 무심히 지나간 풍경, 사람, 동물, 뉴스들을 보는거다. 때론 당신의 줄리아가 하는 말을 잘 듣는 것도 좋다. 그게 어려우면,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기를 감지하고 싶다면 공포 영화를 분해하고, 사랑을 애타게 찾고 있다면 멜로 영화를 분해하고, 미래를 대비하고 싶다면 SF 영화를 분해하고...... 영화에 놓인 인물을 분해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당신의 마음에는 근육이 생길 것이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받아들이고 부딪힐 수 있는 근육. 193P -

 

 

PART6. 네버 앤딩 영화 생활

 

나는 유튜브 플랫폼이 모든 콘텐츠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표현했듯이, 유튜브는 그저 도구다. 못을 박으려면 망치가 필요하고, 종이를 자르려면 가위가 필요하다. 유튜브는 망치가 될 수도 가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 모서리가 닿으면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튜브가 아니라, ‘보다 영상이라는 언어를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세대가 오고 있다는 점이다. 22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