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 한수희 -
틀 넘어의 이야기.
크고 화려하지 않은, 작지만 울림이 있는 8년간 모아온 책과 영화의 기록.
나는 좋은 이야기에는 그것이 웃기는 이야기든, 심각한 이야기든, 시니컬한 이야기든, 감상적인 이야기든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이 바로 인생은 어떤 것이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 속에 인생은 이런 것이야,
인간은 이런 존재야, 하는 확실한 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나 작가가 그 답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전력을 다해 부딪치는 과정이 있다면, 나는 그 이야기를 신뢰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유대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때 나를 싫어하는 한 명에게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주는 두 사람에게 집중할 것인가, 혹은 남은 일곱 사람에게 주목할 것인가? 그게 관건이야.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한 명만 보고 ‘세계’를 판단하지
-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 38p-
인생은 혼자 항해하는 어두운 밤바다지만, 그 바다를 항해하는 다른 배들의 불빛을 느끼려면 우선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라이언의 동료 매트의 말처럼 “착륙은 곧 발사”다.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돌아가야 한다.
언제나 돌아가는 것이 시작이다
- 54p -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작가들과 이렇게 많은 책들이 필요한 이유는, 아직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쁨과 고통과 보람과 상처와 기쁨과 열정과 회한 같은 것을 어떤 식으로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선물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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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각자의 ‘이 정도’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풍기던 태연한 말투와 태도를 떠올리면 왠지 안심이 된다. 아마도 내가 발견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무엇, 하지만 간절히 찾길 바랐을지도 모를 그 무엇을 저들에게서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확신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게 아니라 행동이 확실을 불러오며, 끝내는 그 확신이 설득력을 가지리라는 믿음, 설령 그 설득이 실패할지언정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순 없다는 사실을 이상한 상점의 주인들에게서 보았던 게 아닐까.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포기나 체념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한 선택일 뿐이라는 것도, 그러니 성장은 반드시 무언가를 더 해내야만 이루어지는게 아닐 것이다. ‘하기’와 ‘하지 않기’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스스로 서 있을 때,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질서를 세울 때, 그렇게 인생을 의도할 수 있을 때 내 안의 ‘근자감’도 함께 자라나리라 믿는다. 그리고는 의연히 말하는 것이다. 저는 이정도가 좋아요. 송은정.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 중에서 70p -
우리가 이 일상을 정성 들여, 바르게 살아간다고 해서 이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달라질 수 없는 곳이기에, 거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역시 이 일상을 정성 들여,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눈을 감거나 귀를 막고 자신만의 성을 높이 쌓아올리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그건 어쩌면 사막에 풀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일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아무 소용도 없고 결실을 맺게 될지 아닐지 모를 일, 그런다고 세상이 털끝 하나 달라질 것 같으냐는 소리나 듣기 딱 좋은 일, 하지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에서도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나는 그런 것이 좋다.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
* 살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이 없는 세계에서도 사람은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우리 자신이 매일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한 동시에 잊으려고 하는 질문입이다. 이야기를 통해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입니다. 신의 존재를 전제로 삼는 성서를 거스른다고 할까, 신이 없는 세계에서 사람이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묻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중에서 93p -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은,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큰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쪽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그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나보다 더 대단한 존재, 나보다 더 큰 존재를 좋아하고 갈망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매 순간이 패배와 좌절의 연속이다. 그런데 실은 그 패배감과 좌절감이 우리라는 존재를 조금씩 이룩해 나간다.
나보다 더 큰 것 앞에서 겸허히 무릎을 꿇은 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분투하는 것, 그런 것이 어쩌면 사람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기쁨 아닐까. 기쁨은 승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패배에서도 온다는 사실을, 무언가를 오랫동안 좋아하고 또 갈구한 사람들은 아는 것만 같다. - 96p -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이 무엇인지는, 그 사랑의 정의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오직 두 사람의 일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두 사람의 것이다. 그러니 그 정의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사랑이 힘든 것이다.
“사이가 좋아 보이네. 슬픈 일 기쁜 일 다 말해줘?”
“엄마가 그러는데,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일수록 할 말이 더 많은 법이래.”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거는 OS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것이리라. 바로 그 다정한 대화 때문에.
114p -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면, 그 사람이 내 손을 잡아줄 때면 사람은 겸손해진다. 곁에 누가 있어서 내 손을 잡아준다는 이 현실이 고맙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아서, 가끔 힘을 주어 꽉 쥐어주어서 고맙다. 115p -
도박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시간이라는 모래시계를, 돈이 주는 중압감을, 사회가 가하는 ‘문어발식’ 속박을 잊게 한다. 도박을 할 때 돈은 결코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 어떤 것, 장난감, 플라스틱 칩, 다시 말해 교환 가능한 본성을 지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또한 진정한 도박사는 심술궂고 인색하고 공격적인 경우가 매우 드물며, 마음속에 너그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잃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소유를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모든 패배를 우연으로 간주하며 모든 승리를 하늘의 선물로 간주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프랑수아즈 사강,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중에서 120p -
엄마는 네가 열심히 공부하길 원해.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성공하길 원해서가 아니라, 네가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라서야. 생계에 쫓겨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 있고 여유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야. 돈과 명예를 남들과 비교하며 쫓기보다는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는 것을 추구한다면 ‘평범’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없어져버려. ‘평범’하다는 건 남들과 비교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지만, 마음의 평안은 자기와 비교하는 것이지. 멀고도 험한 이 길의 마지막 종착지는 역시 ‘자기 자신’이야
- 룽잉타이.안드레아, <사랑하는 안드레아>중에서 180p -
부모는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것은 반드시 성공한 삶을, 부유한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에 의미 있는 일, 종종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조금 힘겨워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룽잉타이가 아들이 디모의 삶을 살게 될까 두려워하는 이유도 편지에 쓴 대로 디모가 성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 181p
그런데 어른의 권위하는 건, 말하지 않아도 배어나오는 자연스러운 권위는 어디에서 올까. 사만다와 시릴의 관계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어른의 권위라는 건 어쩌면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지도 모른다고. 그 사랑은 가엾은 존재를 향한 연민과 그 존재를 책임지려는 강인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보답을 구하려는 마음 없이 우리보다 약한 존재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20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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