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목소리를 드릴께요 - 정세랑 소설집 -

아라모 2021. 8. 3. 16:03

 

목소리를 드릴게요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11분의 1

리셋

모조 지구 혁명기

리틀 베이비블루 필

7교시

메달리스트의 좀비시대

 

* 뭔가 거창한 것 없이도 그저 선하고 즐거운 공간, 날카로운 비판조차 결 곱게 다듬은,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이들을 위한 놀이터. 정세랑의 첫 SF 단편집 < 목소리를 드릴게요 >는 이처럼 만나기 힘든 안식처를 제공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무거울 때, 그냥 심심할 때, 짝사랑을 하고 있을 때 등등, 언제고 부담 없이 들러서 쉬어 가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이 작은 세계의 동지가 되기로 마음먹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요!

정세랑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김규림, 평론가 -

 

 

100억에 가까워진 인구가 과잉소비에 몸을 맡겼으니, 멸망은 어차피 멀지 않았었다. 모든 결정은 거대자본에 방만히 맡긴 채 1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꾸고, 15분 동안 식사를 하기 위해 4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플라스틱 용기들을 쓰고, 매년 5천 마리의 오랑우탄을 죽여 가며 팜유로 가짜 초콜릿과 라면을 만들었다.

재활용은 자기기만이었다. 쓰레기를 나눠서 쌓았을 뿐, 실제 재활용률은 형편없었다. 그런 미래가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리셋 45p

 

데드 스톡은 데들리 했네.”

팀장이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수요를 한참 웃돌게, 아무도 원하지 않는 물건들을 생산했더니 과거의 풍요로움이란 굉장히 기분 나쁜 풍요로움이었던 것 같다. 윤리는 본능적인 비위에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변화하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리셋 82p

 

20세기 중반부터 어떤 궤도가 그려질지 알고 있었으면서, 150년 동안 막지 않은 것의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38억 년 진화의 결과물들이 20세기와 21세기에 지워졌습니다.

인류는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다음에야 이 작은 행성의 가치를 다시 매겼던 것이다.

7교시 222p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문명이 잘못된 경로를 택하는 상황을 조바심 내며 경계하는 것은 SF 작가들의 직업병일지 모르지만, 이 비정상적이고 기분 나쁜 풍요는 최악으로 끝날 것만 같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될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으면 종겠다.

작가의 말 중 26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