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우리가 어른이 된 후 '어떻게 예술가로 남을 것인가'이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는 피카소가 던진 화두에 대한 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우리의 삶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얼마든지 우리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예술이 되는 삶'이 '진짜 나의 삶' '나 있는 그대로의 삶'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삶'이며, 그때 우리가 찬란히 살아 숨 쉬며 빛난다고 믿는다. 원한다면 당장도 가능하다.
그것은 '진심 어린' 마음의 문제이며, '진심 어린 ' 행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8p 프롤로그 중 -
미술작품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우리 스스로 온전히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보기의 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시간인 것이다.
보기의 결정권을 온전히 발휘하며 자유롭게 누리는 '미술의 시간'. 이것의 진가를 깨닫고 흠뻑 즐기다 보면,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보기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힘이 생긴다.
누군가에 의해 보여지고 있는 것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스스로 보는 것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힘 말이다.
우리가 보는 것.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생각이 싹트고 감정이 싹튼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의 내면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된다. 넘쳐흐르는 볼거리가 우리의 눈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지금,
보기의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정보의 폭격에 휘말리지 말고, 그것을 받아들인 뒤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민해야 해" - 프랜시스 베이컨 - - 46p
우리가 예술을 즐기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결국 인간과 삶, 세계에 조금 더 깊고 넓고 다채롭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반면 예술가는 삶을 살며 자신이 이해한 인간, 삶, 세계에 대한 통찰을 작품에 자기만의 표현 방식으로 응축해 담아내려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온몸으로 미술
작품을 감각하고, 소설과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와 연극을 본다.
이렇게 예술을 즐길 때, 비로소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미처 모두 경험해 볼 수 없는, 생각하고 느껴볼 수 없는 무언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낄 기회를 창조해 낼 수 있다.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경험의 양과 질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다. 생각의 폭과 느낌의 깊이 역시 무한히 팽창시킬 수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지식을 넘어 지혜를 얻게 된다.
- 51p 나를 깨우는 질문들 중 -
나태함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일을 하지 않을 뿐 숨은 쉬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외부 압력에 속박되지 않고 순수하게 숨 쉬며 살아 있는 상태를 온전히 누리는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사회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의 여백'을 스스로 허락하는 마음.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나태함이지 않을까?
우리는 나태할 때 비로소 예술적으로 살 수 있다. 삶에서 '아무 할 일이 없는' 시간의 공터를 스스로 허락하고 만들어야 비로소 내가 숨 쉬고 살아 있음을 체감할 수 있고, 예술을 할 수 있다. 감각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예술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
예술은 삶 속 나태함을 허락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비밀의 숲이다.
삶을 감상하고 표현할 '삶의 여백'을 기꺼이 창조할 수 있는 이가 발견할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세계다.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 110p , 116p 삶을 예술로 만드는 비밀 중 -
이렇게 보면 예술은 결국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 무이미하게 여겨지는 것 속에 숨어 있는 오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원초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반 고흐가 마른 해바라기를 그려 전하고자 하는 바, 뭉크가 잘린 통나무를 그려 전하고자 하는 바, 밀레가 농부의 일상을 그려 전하고자 하는 바, 이우환이 돌로 전하고자 하는 바, 김창열이 물방울로 전하고자 하는 바, 최정화가 플라스틱 소쿠리로 전하고자 하는 바, 김수자가 바느질로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의 근원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사실이 예술가 모두는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예술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서도. - 148p
나는 미술관에 간다. 그리고 마치 지금껏 단 한 번도 미술작품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작품을 마주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미술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백지가 된 것처럼. 오늘 태어난 아이처럼, 순수한 아이의 눈을 지닌 채. 그리고 미술관을 나와 그 눈으로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벗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보고 싶다. - 162p
예술을 즐기며 자기 감정과 생각을 만나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누군지 말이다.
그래서 미술을 감상하는 것이 힐링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위로해 주기에 힐링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에 도움을 주기에 힐링인 것이다. 치유다. 예술은 여전히 캄캄한 나의 내면을 조금씩 조금씩 밝혀주는 등불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 나를 위해 예술을 즐기는 것이며, 온전히 나답게 즐기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미술작품을 봐야 할까? 나를 위해, 나의 감정을 만나기 위해, 나의 생각을 만나기 위해, 나의 관점을 만나기 위해, 나아가 나의 철학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 176p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 예술을 창안해 낸 우리 인간의 삶 역시 정답이 없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예술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해야 하듯, 삶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삶이 무엇인지' 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예술은 정답이 없어 좋다.
예술이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그 자유를 사랑한다.
예술과 대화를 시작할 때, 무한한 자유의 날개를 펼친다.
삶은 정답이 없어 좋다.
삶이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그 자유를 사랑한다.
삶과 대화를 시작할 때, 무한한 자유의 날개를 펼친다. - 261p
"예술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삶에서 행한 어떤 행위가 행위자에게 정신적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 그것이 예술이다."
....................
당신에게 정신적 만족을 주는 작업은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의 예술이다.
그리고 그것을 단 한 번뿐인 당신의 삶에서 행할 때, 당신에게 예술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다른 대상이 아닌, (당신 자신)이 된다. - 321P 지도는 내 안에 있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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