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장미의 이름은...장미 (은희경 연작소설)

아라모 2022. 8. 31. 18:29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아이콘 은희경의 일고번째 소설집.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가' 라는 인간관꼐를 둘러싼 근원적 문제를 작가 특유의 개성적이며 상큼한 어법으로 형상화했다 는 형과 함께 오영수 문학상 수상.

 

 

다만 그건 멀리서 보았을 때일뿐, 시간을 들여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곳 역시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사람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인 것 같고, 한동안 더 좋은 사람을 만난 듯한 기대에 빠지지만 그 역시 가까이서 보게 되면 또 다른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일에 대한 흥미도 오래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결국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던 새로움은 잠시나마의 환기를 우리에게안겨줄 뿐 삶은 장소만, 주인공만 바꿔서 같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중에서 -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떄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새도를 해야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

    - 117 p  장미의 이름은 장미 중에서 -

 

 

어머니는 관공서의 현수막에 적힌 어르신이라는 표현도 호들갑스럽다고 싫어했다.

귀여운 할머니라는 말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틀니를 아무데다 빼놓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것은 결코 싫어하면 안 되는 물건이었으므로

귀엽게 여기려고 노력했고 결국 성공했는데, 귀여움은 그처럼 너그럽게 보아주거나 기특한 경우에 쓰는 말이라는 거였다.

어머니는 '할머니 같다' 라는 말 못지않게 '할머니 같지 않다' 라는 말에도 거부반응을 보였다.

"내가 인자하게 대하면 할머니라서 그렇다고 하고 냉정하게 대하면 할머니이데도 그렇다고 하고, 결국 할머니가 인자하다는 생각은 안 바뀌지. 근데 내 성격이 냉정한 것하고 할머니인 것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그럼 누가 잘못 생각한 거겠냐. 그 사람들이냐 나냐."

   -  229 p 아가씨 유정도 하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