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산문집-

아라모 2020. 12. 11. 13:27

적어도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의 그는 완벽한 사랑을
꿈꿀 것이며, 나아가서는 그 떨리던 순간의 추억을 되새겨 삶의 고비마다 무디어지거나

빗나가는 사랑을 다시 날카롭게 바로잡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108p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中-

 

제나라의 글자를 만든 임금이 있었고, 어떤 도를 실천하려는 선비들이 있었고,

인간답게 살기를 애쓰는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통성을 얻었던 것과 같다.

              -106p 내가 믿는 대한민국의 정통성中-

 

며느리는 아궁이에 불을 피울 때마다, 제 고달픈 삶을 한탄하고 시어머니의 행패를 풍자하는

말로 노래를 지어서 부지깽이로 부엌을 때리며 부른다. 누가 이 노래를 듣고 시어머니에게

고자질을 했다. 시어머니가 대답했다. " 나도 그 노래 들었다. 노래로는 무슨 소린들 못하겠으며,

노래가 그렇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냐," 이 시어머니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오늘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188p 장옥이 각시의 노래中 시어머니의 용기와 아량-

 

우리는 여전히 체면을 존중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한 사람이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체면에

손상되는 일을 누군가 맡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서는 내내 어머니와 아내들이 그 천역을

감쪽같이 감당해주는 '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이 경쟁사회에서 남자들이 그럴듯한 현실과 맞서

공훈을 세우는 동안, 일반 주부들은 어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자질구레한 현실, 그렇기에 가장

진정한 현실과 끝없이 실랑이를 벌여왔다. 여자들은 얼굴을 감추는 대신 몸을 드러냈으며 그 몸으로

여러가지 의미에서 오랫동안 삶과 생명을 유지, 관리해왔다. 그래서 여성의 익명성은 우리 생활의 사실성이

되었다.

             -194p 익명성과 사실성中-

 

사투리에 묻어 있는 끈끈한 정은 부정을 의리로 여기게 하고 협잡을 지혜로 둔갑시킨다. 사는 일이 늘 그런 것이라고

믿게 하는 사투리의 너스레는 모든 죄책감을 완화하고 털어낸다.

토속의 언어는 사람살이의 깊은 속내를 터득하도록 도와주고, 감정의 밑바닥을 자극하여 새로운 영감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토속어와 방언에는 감정과 생각의 어떤 극한이 있다. 혈연과 지연에서 비롯한 원시적 정서의 탄력을 받고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 말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사람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사투리의 장점이 여기 있지만 위험도 역시 그 자리에 있다. 같은 언어 정서를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부담 없었던 말이 다른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드는경우는 허다하다.

사투리로 표현할 때는 제법 훌륭하고 탄탄했던 생각을 표준어로 바꿔놓고 보면 여기저기 허점이 드러나는 수도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인이라면 사석에서라도 표준어를 써야할 이유가 이와 같다.

             -208p 사투리의 정서 中-

 

출제자들이 필경 염두에 두었을 의견,

진실에 대한 추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 속에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고,

그로써 자신의 생각을 다시 성찰하고 그 깊이와 폭을 넓혀,

한 주관성이 다른 주관성과 만날 수 있는 전망을 내다보고,

인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이라도 사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가 오히려 수줍은 목소리다.

            -224p 논술고사 답안지를 넘겨보며 中-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115p 폭력에 대한 관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