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수준이나 등급을 의미하는 한자 品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구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격이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은 분명 내가 구사한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인간의 입술은 그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는 말이 있다.
내 입술에 내 말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 무섭고 서늘한 얘기다.
말의 생성과 소멸의 본질이 그러한지 모른다. 폐에서 올라온 공기는 목구멍과 혀끝을 다라 걷다가
입술이 오므라들고 닫히는 사이를 틈타 밖으로 새어나온다.
내가 빨아들인 공기와 내 안에서 생긴 묘한 파동과 공명이 곧 내 음성으로 태어나는 셈이다.
종종 가슴에 손을얹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말과 글과 숨결이 지나간 흔적을, 그리고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는 건 아닌지를, 말이라는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뾰족한 무기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소설 <실낙원>의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는 "둔감력鈍感力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둔한 감정과 감각이라는 뜻의 둔감에 힘을뜻하는 力자를 붙인 둔감력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곰처럼 둔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이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자각하고 적절히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둔감력은 무신경이 아닌 복원력에 가깝습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즘으로 일컬어지는 후흑학 (厚黑學)에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청나라 말 사상가 이종오는 동명의 책에서 "난세를 평정한 영웅호걸의 특징은 '후'와 '흑'으로 집약된다"고 했다.
여기서 '후'는 얼굴이 남보다 두터워 감정을 쉽게 들키지 않음을 뜻한다. '흑'은 글자 그대로 검은 곳이다. 그냥
검은게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ㄱ깊고 새까맣다는 의미이다.
일부에선 후흑을 '뻔뻔함' 정도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최근에 이를연구한 학자들은 '무디고 둔감한 감정이 지닌 힘' 혹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역량' 으로 풀이한다.
둔감력은 좌절감을 극복하는 마음의 근력 또는 힘을 의미하는 '회복 탄력성' 같은 단어와 어감이 묘하게 겹쳐진다.
타인의 말에 쉽게 낙담하지 않고 가벼운 질책에 좌절하지 않으며 자신이 고수하는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힘.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바로 둔감력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피로 사회> 라는 책을 통해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주요질병이 있다. 21세기를 지배하는 질병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질환이다"라고 말했다.
난 그의 주장을 빌려, 작금의 우리 사회를 '지적 指摘 과잉의 시대'라고 부르고싶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불평과 지적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듯하다. 쓴소리와 하나가 되어 몰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경우도 있다.
그러나 타인의 허물을 콕 집어서 가리키는 지적의 말은 자칫 독설로 변질할 수도 있다.
독설은 글자 그대로 혀에서 나오는 독이다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독도 있지만, 대개 몸과 마음을 망치고 독을
흩뿌린 사람의 혀마저 망친다.
착한 독설, 건설적인 지적을 하려면 나름의 내공이 필요하다. 사안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통찰은 물론이고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말 속에 배어 있어야 한다.
말 자체는 차갑더라도, 말하는 순간 가슴의 온도만큼은 따뜻해야 한다.
포용 包容은 대인 관계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지도 모른다.
대화를 나눌때 상대와의 공통점을 찾는게 그리 특별한 기술은 아닐 것이다 .필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태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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