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김소월의 시 <산유화> 중
전처와 살 때는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었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의 다툼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것이 사소하지 않았고, 무의미한 것들이 쌓여서 무의미하지 않았다. 화해하려는 노력이 더 큰 싸움을 일으켰다.
그 여자의 결론은 '지겹다'는 것이었고, 나는 나의 지겨움으로 그여자의 지겨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 125p 대장 내시경 검사 중 -
S교수는 주례사에서
- 결혼은 물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신랑 신부가 안정된 수입의 바탕을 확보하는 일에 힘쓰기를 바란다.
사랑이 아니라, 연민의 힘으로 살아야 오래 살 수 있다. 라고 말했다.
하객들 중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월롱동은 '물적 토대'는 먹고살 만큼은 이루었으나,
날마다 몸과 마음을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일을 지속시킬 만한 '연민의 힘'을 길러내지는 못했다.
- 141P 대장 내시경 검사 중 -
나는 단풍을 줍는 영자를 따라서 사육신 묘지 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공원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우연히 영자를 만나서 따라갔다. 나는 뚝불을 먹고 있었는데 영자는 입구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사람의 등과 어깨에 뭐가 있기에 뒷모습만으로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인지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기억 속에 각인된 시장기처럼 지금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지나간 느낌을 다시 살려내서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았다.
- 180P 영자 중 -
하느님의 섭리는 끈임없이 발현되어서 시공에 가득찬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 인간의 영혼으로 응답하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지향성이다. 멀리, 그리고 가까이 나타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스스로 느끼는 것, 그것이 인간의 영성이고 모든 앎의 발단이다. 그러므로 지식과 신앙은 계시를 감지하는 영혼의 작용으로서 동일하고 영성 안에서 통합된다.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하는지, 앎이라는 정신 작용의 동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궁극적 실체를 사유해야 한다
- 223P 저만치 혼자서 중 -
* 삶은 외로움을 견디며 죽음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있다.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처럼 인간의 삶은 함께인 듯 혼자다.
남들이 다 알지 못하는 쓸쓸함을 품은 이책의 단편들을 읽으면 모든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외로움과
고단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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