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 한수희 에세이 -
교토라서 특별한 바람 같은 이야기들.
“시간을 허비하기 위해
시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위해 나는 교토로 간다.
교토에서 홀로 있을 때 나는 보통 걸으면서 생각을 한다. 바람 같은 생각을.
바람은 목적지 없이 그저 불어왔다가 불어갈 뿐인데, 걸으면서 하는 생각도 같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대화를 한다. 바람 같은 대화를.
교토에서는 오래된 것들이 낡고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니라 시간의 힘을 증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인생은 매일 경이로움을 느끼기에는 너무 빨리 흘러간다.
이 오래된 도시는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거기 잠깐 멈춰. 그리고 조금 쉬도록 해.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서. 세상이 어떻게 굴러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또 어디로 굴러갈지 한 번 보라고.
- 프롤로그 12 p -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는 <광신자 치유>라는 책에서 광신주의를 치료하는 해법으로 유머감각을 들었다. 이 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전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 만연한 광신주의, 즉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그런지 내가 너를 구원해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행위를 꼬집는다.
아모스의 진단대로 이런 사고방식의 근원은 단순히 유머감각의 부재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유머감각은 타인을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웃을 수 있는 힘이다. 자신을 별 대단치 않은 존재로 볼 수 있는 힘. 자신을 안이 아니라 박같에서 바라볼 수 있는 힘. 그것은 또한 이 인생이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삶 전체를 꿰뚫어 보는 깊은 통찰력에서 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노화는 유머 감각 없는 노화인지도 모르겠다 - 39p -
어른이 된 후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의 과거를, 그리고 아빠의 과거를 상상해 보곤한다. 우리를 낳기 전의 엄마와 아빠를, 도대체 왜일까. 요즘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부모의 과거를, 부모가 부모가 아니던 때를 상상한다는 것은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모든 걸 되돌리고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던 때를 상상하면서, 나는 ‘그럴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된다.
사랑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들어 있다. 공감과 안타까움, 연민과 격려까지도.
- 19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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