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

[스크랩] 엄마, 누가 이겼어?

아라모 2010. 7. 8. 23:31
 

몇 번 버스라고까지는 밝히지 못하겠다.

서울 시내버스였고 중심가를 약간 벗어난 변두리지역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한 버스가 신호등 앞에 서 있었는데 옆 버스에서 빵빵 경적을 울렸다. 문을 열어 보라는 신호다. 기사가 문을 열자 대뜸 욕설부터 날아왔다.

"이 새끼, 지금 눈깔 어디다 잡혀먹었어? 내 차 안보여? 왜 앞지르고 난리야?“

눈을 최소한 두 배 크기로 부라리고 욕설을 퍼붓는 저쪽 기사의 항의에 이 쪽 기사라고 얌전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승객들이 모두 다 주시하고 있는데 망가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한 옥타브 더 높은 크기의 목소리, 더 격렬한 욕설로 제압해야 한다.

"이 c8놈아! 너야말로 환장한 새끼 아녀? 내가 뭘 어쨌다는 거여?"

갑자기 이쪽 기사는 창문을 박차고 저쪽 버스로 달려갔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타더니 대뜸 삿대질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사, 저쪽 버스는 이쪽 버스 기사를 실은채 쌩~ 쏜살같이 달리고 말았다. 이쪽 승객들은 완전 '새'되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 별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별의별일 다 당하고 사는구나 ..... 대한민국은 정말 희한한 나라야. 이러니까 다른 나라 이민간 사람들, 심심해서 못 살겠다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자. 정말 재미있는 나라야.

모두 이런 생각을 하며 당황^ 황당^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돌연 기사가 버스에 돌아왔다. 승객들은 환호성을 지를 만큼 기뻤다.

돌아온 기사의 모습을 보니 할퀴거나 상처 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너무 멀쩡한 것이 오히려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어떻게 무사히 살아 돌아 왔을까? 그리고 이렇게나 빨리?

모두들 궁금했지만 그 궁금증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편 총 사령관이 전쟁에서 적군을 모두 섬멸하고 대승리, 금의환향한 것처럼 마냥 가슴이 벅차올랐다. 기사 역시 자기가 마치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감격과 감동의 물결 속에서 거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핸들을 잡고 달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경찰 백차가 뒤따라오며 방송을 했다.

"앞에 가는 000번 버스 기사, 빨리 차를 멈추고 000번 버스 키를 반환하라, 빨리 반환하라!"

승객들은 왠 영문인가 하고 놀라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 노벨 문학상을 탄 세계 최고의 소설가가 그 버스에 타고 있었다 해도 그 미스터리를 해독하진 못했으리라.

결국 경찰이 들이 닥치고 사건은 밝혀졌다. 이쪽 기사가 저쪽 버스로 가자 그냥 막무가내로 기사를 싣고 달려버린 저쪽 기사, 그러다 신호등 앞에 멈추게 되었다. 그러자 때를 놓칠세라 순발력을 발휘한 이쪽 기사. 멈춰 있는 버스에서 재빨리 열쇠를 빼가지고 번개처럼 버스에서 내려버린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다 천둥 번개 같은 동작으로 서로를 골탕 먹인 셈이다.

1승1패. 누가 이기고 누가 졌다고 말 할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은 모두 격렬했고 또 무모했다. 승객들의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폭발 직전 감정에만 충실했다.

경찰이 나서서 간신히 해결했지만 이건 완전히 해외 토픽감이었다. 승객중에는 약속시간이 늦어 발을 동동 굴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사태를 관람한 승객들이 더 많았다. 출근시간이 아닌 비교적 여유가 있는 오후 3시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생생한 드라마, 더 이보다 더 리얼리티가 넘치는 영화를 어디서 구경할 것인가, 그야말로 한 편의 스펙터클이요 블록버스터였다.

승객들의 각양각색의 반응도 못지않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사람들, 중요한 약속에 늦은 사람들은 거의 사색이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올라탔다, 안절부절 못하는 정서 불안정 초기 증세를 보이다 결국은 택시! 택시! 를 소리치며 사라졌다.

연인들은 하하 웃으며 그 시간을 즐겼다. 키스도 하고 포옹도 나누며 '어머, 저것 좀 봐. 할 일도 되게 없지? 우리처럼 찐한 사랑을 나누면 얼마나 좋아? 왜 싸우고 난리람? 저런 사람들 모아놓고 우리 정신 교육이나 시켜볼까? 러브하고 사세요! 이 세상에서 러브이상 맛있는 메뉴는 없답니다.'

그들은 남들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마치 세상이 자기들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넓고 큰 버스를 마음껏 활용했다.

쇼핑을 다녀오는 아줌마는 휴대폰으로 이 상황을 현장 중계했다.

"야~ 진짜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꼭 뉴스에서나 나오면 딱 맞을 그런 일이야.

내가 글쎄 버스를 탔는데말야, 버스 기사들이 진짜 쥑인다야. 서로 으르렁거리고 싸우는 게 꼭 우리부부 같지 뭐야. 죽기 살기로 쟁탈전을 벌리는데 과연 누가 이길까? 나는 그것이 보고잡다 이거지.... 호호호^^."

아이 손을 잡고 친정집에 다녀오던 젊은 엄마는 이 숨 막히는 현실이 곧바로 교육 자료로 활용했다.

"너두 봤지? 싸우면 저렇게 경찰아저씨가 와서 야단치고 벌 받는거야. 사이좋게 지내야 칭찬 받는 거 알지?"

엄마가 어떤 말을 했는지 그 숭고하고도 고차원적인 내용보다는 흥미진진한 싸움의 결말에만 관심이 쏠린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엄마, 어떤 아저씨가 이겼어?"

성격이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법을 어겨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준법정신으로 똘똘 뭉친 할아버지는 고함을 꽥꽥 질러댔다.

"이것 봐 기사양반, 도대체 이런 경우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우리 승객을 볼모로 잡아놓고 웬 싸움질이야, 싸움질은? 당신은 기사로서 지켜야 할 기본 교양이 없는 거야. 우리나라가 이래서 이 모양 이 꼴이지. 모두 다 기본이 안 돼 있어! 기본이!"

한참 단잠에 빠져 있던 할머니는 웬 소란인가 놀라 깨어났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던 할머니가 한소리를 했다.

"아니 , 어디 불이 난겨? 왜들 이리 시끄러? 아이고, 꿈속에서 우리 영감을 만나서 한창 재미 있었는디 이게 뭐여? 아까워 죽겄네........" 

                               - 이 시대의 자칭 뱃짱 아줌마  최윤희 강사의 ' 행복동화 '중에서 -

 

이분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어서 가까이 뵌 적이 있었는데 정말 있었던 일이라네요. 약간의 각색이 있었겠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자구요^^     

 

출처 : 양둘회포럼
글쓴이 : 아라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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