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데츠가 오사무의 아톰은 2003년4월7일생이다.
그러니까 아톰은 '먼 미래였던 2003년'에 눈을 뜨고 생을 시작했다.
한때에 별별 SF들이 가설을 세우던 그 먼 미래를 갓 지나쳐온 시간에
우리가 지금 서 있다.
무수한 SF들은 이 미래를 비판했고, 이 미래에 인간이 대오각성을 할
거라 믿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현재가 되어버린 이 미래에 대해,
비관은 별미처럼 잠깐 하고 말 뿐, 능란하게 적응한 채 미래라는 깃발을
또 한 뼘 앞으로 옮겨 심고서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 중이다.
참회없이 이 기이한 세상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살아가고 있는게 아니라 유령으로 배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멸망했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유령임을 인화해내고, 전혀 예정치 못한 기형이 되어있다고 진단하고,
밤마다 용서라는 말을 듣고( 이진명의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신음하며
식은 땀을 흥건히 흘리는 일을 그나마 시가 하고 있다.
시는 무력하고 배고프고 나약한 채로, 세상의 절벽에서 처절히 매달려
목숨을 건다. 사산된 채로 태어난 흑인 아이의 영혼처럼, 축복과 조의를
한꺼번에 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 운명이다.
봄날의 경이에 예민해지는 자.
'그는 사랑을 아는 자다'하고 조심스레 적어본다.
무슨 힘으로 그 딱딱한 것을 뚫고 싹이 나고 꽃이 피는지,
그 힘이 시끄러워서 괴로울 정도의 봄, 봄이 오고 또 간다는 이 은근한 힘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무슨 기적처럼 여겨지는 사람은 아마도,
사랑을 아는 자일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꽃을 갖고 있다. 꽃은 부드럽게 떨리며 하루하루 꽃잎을 여닫는다.
단조로우면서도 환희에 찬 하루를 산다.
그 꽃은 한꺼번에 피어서 온 세상을 화사하게 뒤바꾸기도 하며 때로는 홀로 수줍게
피어 어느 한 산책자의 발길을 묶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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