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내가 좋아하는 작사가.
음악을 대하는 마음과 이해도가 특별나다.
생각해보면 잘 모르는 사람이 내게 갖는 부정적인 감정은 차라리 당연하다.
사람은 서로를 각자의 주관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앵글에서 모두에게 완벽한 피사체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 그건 지옥의 시작일 테다.
대신 생긴대로 살아가다 거름망에 걸러지는 내 사람들은 사금처럼 귀하다.
내가 라디오 DJ를 꿈궜던 이유도 라디오는 카메라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게 나의 모습을 드러내고 함께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듣다가 별로라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들의 수없이 존재하겠지만,
꾸준히 함게해주는 사람들은 나의 삐뚤삐뚤한 모양을 보고도 같이 웃어주는 사람들이다.
방송인 동시에 이럴 수 있는 곳은, 라디오가 유일한 것 같다.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자.’ 미움받을 용기까지는 없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나의 인생관이다.
-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을 것 24p –
사랑하기에 좋은 사람
결정적으로는 그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그 사람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거죠.
그때 느끼는 벅참이 있잖아요. 저도 그럴 때 벅참을 느끼는 거 같아요.
함께 있기만 해도 나를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 순간 비로소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또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감정이 느껴지더라구요 -26p –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거리
누군가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때, 그것을 그렇다고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두고 ‘선을 긋는다’ 고 말한다.
그리고 이 표현에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감정은 서운함이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기에, 선 그을 펜을 쥔 사람은 머뭇거리게 된다. 어쩐지 매몰찬 행동 같으니까.
나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모두 약간씩의 거리를 두는 편이다.
아니, 친할수록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가까워도 거리는 둬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구구절절 설명을 하게 되는 건, 내 의도와 ‘거리를 둔다’는 말이 가진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고자 하는 바를 풀자면 이렇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보아야 한다.
세심히 살펴야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한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당연히 잘 안다고 여기는 순간, 관계는 V3가 깔리지 않은 컴퓨터가 된다.’
선을 긋는다는 말은 내겐 ‘모양을 그린다’는 말과 같다.
5개의 선을 그어 만들어지는 게 별 모양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야’라고 알리는 행위가 선을 긋는다는 의미이다.
간단하게 지도를 떠올려보자. 꼬불꼬불한 선으로 나뉘어 있는 수많은 국가들은, 선이 있다고 해서 서로 단절된 관계들은 아니다.
한 예로 유럽의 경우 각국의 법령, 풍습, 기타 여러가지 현실적인 차이들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지키기 위한 테두리로 그려져 있지 않은가.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이 그러하듯 사람 마음의 모양은 전부 다 다르다.
선을 굿지 않는다는 건, 모양이 없는 액체 괴물처럼 살아가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니까 선을 긋는 건, 여리고 약한 혹은 못나고 부족한 내 어딘가에 누군가 닿았을 때 ‘나의 이곳은 이렇게 생겼어’ 라고 고백하는 행위다.
반대로 남들보다 더 관대하거나 잘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시원하게 트여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나라는 사람을 탐험하는 상대방이 판단하는 부분이 된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나도 몰랐던 내 영역을 알게 해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통해 확장되기도, 스스로를 알아가기도 한다.
살다 보면 부득이 선을 긋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이들은 나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나를 관찰해주고, 그걸 토대로 내 성향을 점선으로나마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밑그림이 나의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때, 나는 무장해제되곤 한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기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 또한 열심히 점선으로 상대를 스케치해본다.
‘이곳이 예민하겠지’, ‘이곳을 흥미로워하겠지’하면서.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그려지는 사람의 모양은 수시로 바뀌기도 하기에 끊임없는 관찰이 필요하다. 이 섬세한 과정을 퉁치는 말이 ‘배려’ 인 것 같다. 그러므로 나와 상대방 사이에 있는 틈은 서로가 서로를 잘 바라보기 위한 것일 테다.
- 29p 선을 긋다 전문 –
사랑하는 마음은 나를 붕 뜨게 하기도, 한없이 추락하게 하기도 하는
역동성을 띤 반면
좋아하는 마음은 온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리게 해 주는 안정성이 있다.
감정이 탄생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면 단어의 속성이 더 와 닿는 경우가 많다.
어떤 감정은 아래에서 위로 나무처럼 자라고, 또 어떤 감정은 위에서 아래로 비처럼 내린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아래, 위로 다르게 탄생하는 감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 예로 ‘분노’와 ‘용기’는 아래에서 위로 움직인다.
그러고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 ‘용기가 샘솟는다’고들 말한다.
이 두 감정은 공통적으로 작은 것들이 켜.켜이 쌓여 일순간 ‘펑’ 하고 터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
반면,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려오는 감정들이다.
나의 의지로써가 아니라 누군가 갑자기 연 커튼 너머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 115p –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육체가 약해지는 데에는 분명, 조금 더 신중해지고 조금 더 내려놓으라는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 156p-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을 빛나게 해줄 무언가일 것이다 - 157p –
우리는 각자 고유한 ‘나’임에 틀림없지만, 세포분열을 하듯 수많은 상황 속에 각기 다른 ‘역할’로도 존재한다.
이 역할은 꼭 의무감만이 아닌 무의식으로도 생겨나는데,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면 그때의 모습으로, 직장 동료 모임에선 그 무리에 맞는 모습으로 있게 되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심지어 꼭 집단에서뿐만 아니라 누구의 앞이냐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 힘들다.
이 모습들을 스스로 인지하지 않으면, 문득 억울하고 외로운 밤이 찾아온다.
‘왜 내 맘을 아무도 모르지? 왜 나는 강한 사람인 줄로만 알지? 그건 누구 탓도 아닌, 우리의 ‘사회성’ 때문이데 말이다.
이러한 것을 잘못 이해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렇다면 큰 오산이다.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 170p 정체성.. 나의 본모습이 혼란스러울 때 –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 만큼이나 크다.
자존심이 꺾이지 않으려 버티는 막대기 같은 거라면, 자존감은 꺾이고 말고부터 자유로운 유연한 무엇이다.
자존심은 지켜지고 말고의 주체가 외부에 있지만 자존감은 철저히 내부에 존재한다.
그래서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를 기특히 여기는 순간은 자존감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다.
선행에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욕망이 부록처럼 딸려온다.
어릴 때 칭찬에 길들여졌을 수많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내성이고, 특별히 나쁠 것도 없는 점이기도 하다.
허나 선행이 누군가의 칭찬과 거래되는 순간 자존감 통자에 쌓일 것이 없다.
나의 대견함을 ‘알아주는’ 주체를 타인에게 넘겨버릇하는 게 위험한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가 대견한 순간은 굉장히 작은 것들이다.
철처히 분리수거를 하는 것, 어리숙한 알바생의 실수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소소한 말을 건네는 것, 플라스틱을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는 것 등등의 사소한 것들이 바로 그런 거다.
나의 존엄을 가꾸어 나가는 일은 결코 거창할 필요만은 없다.
존엄이라는 말의 무게 때문에 창씨개명에 맞서고 인권운동에 삶을 바치는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같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존엄한 사람들은 일상 속 하찮은 순간들이 정갈한 이들이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 생각해서 스스로를 칭찬해주지 않았던 깨알 같은 장면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고요히 자신을 토닥여주는 습관을 가져보자.
- 200p 기특하다. 나의 존엄을 가꾸어 나가는 일 中에서-
나무늘보의 생존법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로 알려진 나무늘보는 하루에 18시간 동안 나무 위에서 잠을 잡니다.
움직임도 느리고 근육 양이 탁월하게 적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동하는 일이 없죠.
이렇게 게으른 나무늘보가 야생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요?
비결은 단순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배변할 때 빼고는 절대로 나무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것, 즉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않는 게 나무늘보의 생존 전략인 셈인 거죠.
옆 사람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살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죠.
혼자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그것이 생존 무기가 되는 나무늘보의 세계….,
가끔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느리게 살고 싶어집니다.
- 22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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